[프리미엄 리포트] 북한에서 특별대우 받는 과학자들..2021년 평양의 과학기술은

이영애 기자 2021. 12.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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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제공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의 과학기술이 국제 무대에서 조금씩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양과 질 모두 과학기술 강국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이 조금씩 늘고 있고 질도 향상되고 있다. 폐쇄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려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195km를 달리면 평양이 나온다. 거리상 대구나 광주보다도 훨씬 가깝다. 다시 북동쪽으로 30km를 올라가면 은정구역이다. 본래 평성시에 속한 구역이었으나 1995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과학자 우대 정책의 일환으로 평양시에 편입된 과학자들의 도시다. 200여 개 연구소가 포함된 국가과학원을 중심으로 각종 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북한 과학계는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1년 집권한 이후 다시 한 번 뚜렷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국제학술지와 학술대회 발표 논문이 늘었고, 질도 향상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NK테크)의 분석에 따르면,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DB)인 과학기술인용색인(SCI)과 스코푸스(SCOPUS) 등재 학술지에 지난해 북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연구 논문은 총 251편이었다. 이는 10년 전인 2011년 39편에 비해 6.4배 늘어난 수다. SCI와 SCOPUS는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와 과학학술지 전문출판기업 엘스비어가 각각 운영하며, 논문이 수록된 학술지가 이곳에 등재됐는지 여부는 흔히 권위 있는 논문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 ‘셀프’ 연구 역량 갖춰가는 북한의 과학

북한에서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의 수는 2011년 39편에서 2020년 251편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9년과 2020년에는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국제학술지는 SCI 및 SCOPUS 등재 논문을 기준으로 삼았다. 2012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취임 1년차로, 특이적으로 발표 논문 수가 많았다. 과학동아DB

북한의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등장하는 사례는 꾸준히 늘어왔다. 2015년까지는 91편에 불과했으나 2016년부터는 100편을 넘어섰고, 2019년과 지난해에는 200편이 넘는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논문을 많이 발표한 기관은 김일성종합대학(김일성대), 국가과학원,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 순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간다는 점도 증명됐다. 2010년대 초 발표된 논문 중 저자가 북한 과학자들로만 이뤄진 논문은 단 한 편이었고, 나머지는 중국, 러시아, 독일 등과 국제공동연구로 이뤄졌다. 그런데 2015년 이후 저자가 북한 과학자들로만 구성된 논문이 대폭 증가했고, 2019년 이후에는 국제공동연구보다 북한 단독 논문의 수가 더 많아졌다. 북한 과학자가 주저자로 등재된 논문의 수도 2011년 26편에서 지난해 197편으로 7.6배 증가해 북한의 학술 역량이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논문에서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물리·천문학, 수학 같은 기초과학과 재료공학, 컴퓨터공학 등이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가 전체 발표 논문의 42.6%를 차지해 비중이 높았다. 북한을 대표하는 기초과학 연구자로는 북한의 수재(엘리트)교육체계를 거쳤다는 김광현 국가과학원 물리학연구소 연구사 등이 있다. 

북한은 폐쇄적인 국가지만, 적어도 과학기술계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북한의 대외홍보용 월간지 ‘금수강산’에 ‘2020년 국가최우수과학자’로 선정된 임성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과 교수를 소개할 때도 ‘피지컬 리뷰B’와 ‘옵틱스 익스프레스’ 등 국제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을 함께 실었다.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를 중요한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뜻이다.

국제적인 평가가 중요해졌다는 변화의 흐름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2018년 한국인터넷정보학회에 북한 과학자가 논문을 투고한 적이 있다. SCI 등재지인 국내학술지에 간혹 있는 일이다. 2016~2017년에는 김일성대 연구팀이 부실학술지에 31편의 논문을 투고했다는 사실이 2018년 뉴스타파의 보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전 국민을 공대 졸업생 수준으로,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

북한 국내 학술지의 표지로 기상과 수문(기상학), 전기·자동화공학, 정보과학(컴퓨터공학)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분야가 눈에 들어온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북한의 노력은 남다르다. 전 국민의 이공계 지식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공대생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국가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대학 진학률은 10% 수준이다. 이에 2010년부터 김책공대를 시작으로 주요 대학에 한국의 사이버대학에 해당하는 ‘원격대학’ 과정을 만들어 기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등 교육 기회를 넓히고 있다. 북한에는 약 180개의 대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학 간 격차가 크다. 그래서 김일성종합대 등 중앙대학에서 만든 교재와 강의 방법을 지방으로 전파하는 ‘학술 일원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수재교육에 특화돼 있다. 북한 명문대인 김책공대에 입학하면 그 안에서 수재반을 따로 운영할 정도다(Part2 '평양의과학도에게직접들어봤습니다' 인터뷰 참조). 이렇게 교육받은 인재들은 국제적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인도에서 개최하는 국제 프로그램 경연대회인 ‘코드쉐프’에서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대가 몇 년째 주거니 받거니 우승을 휩쓸고 있다.

북한 과학자들은 온라인 검색으로 학술자료를 쉽게 구할 수 없다. 이에 2015년 10월에는 대동강 쑥섬 지역에 과학기술전당을 만들었다. 한국의 국립중앙과학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같은 곳이다. 국가자료통신망(내부망)을 통해 기업, 대학에 있는 과학기술보급실, 행정조직(행정기관)의 미래원(도서관)이 서로 연결돼 있어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최현규 KISTI 책임연구원은 “해외 학회에서 만난 북한 과학자들에게 논문을 보여주면 출력해서 줄 수 있냐고 요청할 정도로 학문적인 열정이 대단하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외국과의 소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2018년 발표한 김일성종합대학학보의 일부다. 수값화(넘버링), 리용(이용) 등 일부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리 없이 읽힌다. NK경제

북한에서 ‘과학자는 사상 문제 이외에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특별 대우를 받는 편이다. 실수에 가혹한 북한도 과학이라는 학문이 오랜 축적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의미다.

2000년 초반만 해도 과학자들은 집이 없어 학생 기숙사를 고쳐 주택으로 사용하는 등 의식주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김정일이 집권한 이후 우수 과학자를 중심으로 대우가 상당히 좋아졌다. 과학자 상점을 만들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게 하는 등 혜택을 주고 있다. 일례로 북한의 백화점인 미래상점에서 과학자는 3000원으로 700유로(95만 원 상당)의 물건을 살 수 있다.

○ 

본의 아니게 재활용, 본의 아니게 친환경

북한의 과학기술 중시사상은 김정일 집권 때부터 본격화됐다. 과학기술 수재교육을 시작했고,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최 책임연구원은 “김정일 집권 때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렸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이를 키우고 열매를 맺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 과학기술계의 큰 관심사인 인공지능(AI)과 우주개발 분야는 북한도 큰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하고 있다. 또 민생 개선과 경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방향성이 세계적인 흐름과 살짝 다르다. 북한의 과학은 첨단보다는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국가에서는 새 컴퓨터를 사거나 메모리를 추가하는 등의 해결책을 떠올린다. 반면 부품 수급이 어려운 북한에서는 이런 문제를 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하는 등 또 다른 기술로 해결한다.

북한에서는 현재 ‘쌀 한 톨이라도, 조각 천이라도’라는 표현이 쓰인다. 재자원화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재자원화는 재활용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북한은 재정적으로 힘든 부분을 기술적으로 해결하거나,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는 재자원화에 기대고 있다.

전기 부족은 오랫동안 북한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북한의 전력 발전량은 한국의 24분의 1 수준으로 파악된다. 그마저도 2016년 기준으로 화력(46%)과 수력(54%)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전기 공급이 원활한 평양에서도 아파트는 고층보다는 저층을 선호할 정도다. 엘리베이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은 석탄 매장량이 많아 주요 전기공급원으로 석탄을 활용한다. 다만 가동률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대안으로 자연 에네르기(친환경에너지)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2014년에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본격화했고, 풍력, 태양빛(태양광), 조수력(조력) 등을 활용한 발전을 하고 있다.

가장 널리 보급된 것은 태양광이다. 북한에서 태양광 패널이 보급되면서 가정용 난방, TV, 라디오 등에 필요한 전기의 자급자족을 꾀하고 있다. 더 많은 용량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풍력 발전소를 이용한다. 북한은 태백산맥 등 산악지형이 많아 풍력발전에 유리하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발전량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아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수력발전은 금야강2호발전소 등 중소형 발전소(소수력발전소)를 짓는 추세다. 전기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개천 등 비교적 유량이 적은 곳까지도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김정일 집권 시절에 중소형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했지만 가뭄이 들 때나 겨울철에 사용하지 못하고, 개천에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는 등의 이유로 신규 발전소 건설이 줄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다시 이를 기술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조수력 발전을 시도 중이다. 바다에 관문을 설치해 유동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올해 1월 개최된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조수력발전소 건설에 국가적 힘을 집중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현재 조수력 적합지를 선정하는 과정에 있고, 앞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북한의 경쟁력은 뛰어난 과학 인재

한국은 올해 10월 누리호를 발사하며 발사체 자력 개발의 첫발을 뗐지만, 북한은 2012년 자체 개발한 발사체인 은하 3호를 이미 쏘아올렸다. 발사체는 동역학, 전자기학, 기계공학 등 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북한은 군사 과학 기술 분야에도 특화돼 있다.

반면 사업이나 민생 기술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평가한 표현으로 ‘한심한’ 구석이 많다. 과학기술에서 우수한 성과가 나오려면 물적 투자가 많아야 하는데, 재정적으로 부족한 탓에 빠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북한은 휴대전화를 생산한다고 광고하지만, 중국에서 수입해 내부 소프트웨어만 북한 버전으로 교체하는 수준이다.

물론 북한만의 강점도 있다. 최대 4800만 t(톤)에 달하는 희토류 등 지하자원과, 수재교육으로 양성된 인재들이 북한의 경쟁력이다. 이에 한국의 과학기술계에서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고 진전이 있었던 분야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북한이 국가 봉쇄를 결정하면서 협력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최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중국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 과학자들과 함께 학술 토론을 했고, 지속적인 학술적 만남에 양측 모두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학술대회는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로 대회 자체가 전면 취소되며 이어지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추후 남북 과학기술 협력을 위해 지속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이 모여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를 구성해 조사·연구를 하고 있고, 농촌진흥청에서는 북한 환경과 토양에 맞는 벼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백두산국제과학기지를 설립해 백두산의 화산 활동을 연구하거나, 기후변화를 남북 공동으로 연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KISTI도 ‘백두산의 자연’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등 남북 공동 콘텐츠 개발과 지식공유 사업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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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2월호 기획

Intro. 국제 사회 문두드리는 북한의 과학기술

Part1.2021년평양의 과학기술은?

Part2.평양의 과학도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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