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겁내지 않는 무기를 없애라".. 파격 변신 시도하는 미군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1. 12. 1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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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A-10 공격기가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과의 경쟁과 대결 구도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이 군사력 재편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20여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발 물러선 미국은 군비증강의 초점을 중국과의 충돌에 맞추고, 이를 위한 군사력 재편의 밑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한다면, 동중국해나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양국의 공군이 최전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J-20 스텔스 전투기와 J-16D 전자전기 등을 잇따라 실전배치하고, 다수의 전투기를 연일 대만해협에 띄우는 것도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장기간 발목이 잡혔던 미국도 공군력 재정비를 준비하려는 모습이다. 중국과의 대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기종을 정리, 6세대 전투기를 포함한 첨단 기체를 도입할 기반을 마련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 공군 “현대화된 중국과 맞서려면 구식 기체 없애야”

지난 5일 미국의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프랭크 캔달 미 공군장관은 “급속도로 현대화되는 중국군에 맞서기 위해 신형 기종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식 기체를 퇴역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 공군 A-10 공격기가 비행훈련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캔달 장관은 중국이 미군의 전략무기를 타격할 방법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면서 “이제 미국이 대응에 나설 차례다. (구식 기체가) 중국을 위협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왜 그것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라고 덧붙였다.

캔달 장관이 지목한 구식 기종은 A-10 공격기, MQ-9 무인기, KC-10과 KC-135 공중급유기, C-130 수송기 중 일부 기체다. 아프간과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에서 위력을 과시했던 무기지만, 중국 공군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은 디펜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기종이 무엇인지, 현재의 군사력에서 미래의 능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는 정말 힘든 결정”이라면서도 “오래되거나 유지비가 높은 기종, 고강도 교전에 적합지 않은 기종이 퇴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 공군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수십 대의 A-10, F-15C/D, F-16 전투기와 KC-135, KC-10 공중급유기, C-130 수송기, RQ-4 무인정찰기 퇴역을 의회에 요청했다.
미 공군 RQ-4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가 감시 임무를 마치고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브라운 총장은 “의회가 이같은 퇴역 조치를 승인하지 않으면, 미래의 위기와 우발적 상황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라며 “우리가 변화하지 않고 과거에 매달린다면 국가안보 측면에서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테러 조직과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

미 공군의 노후 기종 문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거론됐던 사안이다. 미군이 A-10의 퇴역을 시도하자 지역구 내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의회가 저지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불거진 논란은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군의 가장 큰 목표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 소탕이었다. 미 공군은 데브그루를 비롯한 특수전부대와 지상군, 중앙정보국(CIA), 현지 정부군이 펼치는 작전을 지원하는 임무가 급선무였다. 
미 공군 F-15EX 전투기가 비행시험을 위해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면 실시간으로 정찰과 공격이 가능한 기종, 대량의 정밀유도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기종이 필요했다. MQ-1 프레데터, RQ-9 리퍼 무인기를 비롯해 근접항공지원(CAS)을 담당한 A-10, F-16 등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이유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이같은 기조를 크게 흔들고 있다. 아프간에서 철수한 미군은 중국과 러시아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보다 훨씬 정교한 방공망과 공군력을 갖춘 국가를 상대로 A-10 등이 위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2019년 6월 호르무즈 해협 인근을 비행하던 미군 RQ-4 글로벌호크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요격미사일에 피격됐다. 이 사건은 “감시정찰 자산도 적 방공망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생존성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됐다. 미 공군은 내년부터 RQ-4 24대를 퇴역시킬 예정이다.

이란보다 강력한 공군과 방공능력을 지닌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하려면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 공군의 인력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과 맞서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비를 퇴역시켜야 6세대 전투기를 비롯한 신무기를 들여올 인적, 재정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대한항공 엔지니어들이 주일미공군 F-15C 전투기를 창정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구식 장비나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무기를 계속 사용한다면, 운영유지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증가로 신무기 도입에 제약이 심해진다.

바다 밑에 내려진 닻에 의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미래 전장에서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무기는 미 공군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 공군은 극초음속 무기 장착이 가능한 F-15EX 전투기를 배치하면서 B-21 전략폭격기와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적 방공망 밖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장거리 타격능력을 앞세운 무기들이다. 미 공군으로서는 이들 신무기를 배치할 ‘영역’을 사전에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변수는 의회의 움직임이다. 미국의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는 A-10 퇴역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중급유기를 비롯한 다른 기종들은 일부가 퇴역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공군은 주변국이 두려워할까

미 공군의 움직임은 한국 공군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창군 이래 미 공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한국 공군은 미 공군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 공군이 도입할 B-21 전략폭격기 상상도. 노스롭그루먼 제공
한국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 중에서 주변국이 위협을 느낄 만한 것은 얼마나 될까. F-35A는 적 레이더 탐지를 회피하는 스텔스 성능이 있어 전략적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KF-16 전투기는 성능개량을 거친 덕분에 향후 10여 년은 최일선에서 활동할 여력을 갖췄다.

반면 1970년대부터 도입됐던 F-4E는 노후화가 심해졌다. AGM-142 공대지미사일 운용능력이 있지만, 사거리가 180㎞에 불과하다.

F-5는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한국형유도폭탄(KGGB)을 제외하면 비유도폭탄만 탑재가 가능하다. 그나마 무장탑재량이 적고 비행거리도 짧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만든 북한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기종이다.

2000년대 도입됐던 F-15K는 한동안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기로 평가받았으나 일본 F-35A, 중국 J-20, 러시아 SU-57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성능개량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모양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에서 처음 실전투입된 F-15C/D는 전자전 능력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는 등의 성능개량을 통해 지금도 미 공군에서 쓰이고 있다.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24발을 장착할 수 있는 F-15EX도 등장한 상태다.
한국 공군 RF-4 정찰기가 비행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F-15K도 성능개량을 실시하면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장착에 따른 전략적 억제력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은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AGM-65 공대지미사일 등을 장착하지만, 사거리가 30㎞ 수준이다. 해외 수출 촉진 등을 위해 공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실현 여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얼핏 보면 한국 공군은 막강한 위력을 보유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주변국을 압도할 수 있는 기종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 공군처럼 노후하거나 운영유지비가 비싼 기종은 과감하게 정리해 신형 기체를 도입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고, 일선의 임무 수행에 꼭 필요한 장비는 성능개량을 통해 영공 방어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대규모 비행훈련에 참가해 편대를 구성,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렇지 않다면 한국 공군은 과거의 유산이라는 거대한 닻에 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선박과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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