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걸스' 악덕 매니저 만난 바이든, "당신 음악 들으며 자랐다"

정지섭 기자 2021. 12. 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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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음악 레이블 '모타운' 창립자 베리 고디에 '케네디 센터 공로상'
마이클 잭슨·다이아나 로스·라이오넬 리치 등 키워낸 미다스의 손
흑인 음악의 거물들과 친인척..카터 전 대통령과는 같은 항렬 친척뻘

할리우드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유명한 ‘드림걸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흑인디바 다이아나 로스(77)와 그가 몸담았던 걸그룹 슈프림스를 실존 모델로 한 이야기다. 특히 영화에서는 로스에 이어’흑인디바’의 계보를 잇는 톱스타 비욘세(40)가 주인공(극중 이름은 디나 존스, 걸그룹 이름은 ‘드림스’)을 맡아서 화제가 됐다. ‘드림걸스’에서 ‘걸스’ 못지않게 주목받았던 캐릭터가 이들을 성공시키고 또한 좌절시키는 악덕 기획사 사장으로 그려지는 커티스 테일러다. 영화에서는 제이미 폭스가 연기했다. 이 커티스 테일러 역시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전설적인 흑인음악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의 설립자인 베리 고딩 주니어(92)다. 영화 개봉 당시 커티스와 베리 고디의 실제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두고 화제가 됐다.

지난 5일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리 고디 모타운 레코드 창립자가 시상식 레드 카펫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흔 두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한 모습이었다. /AP 연합뉴스

모타운을 창립하고 이끈 그는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아나 로스, 스모키 로빈슨, 마빈 게이 등 헤아릴 수 없는 팝스타들을 키워낸 미다스의 손이다. 지난 5일(현지 시각) 그가 모처럼 미국 정계와 문화계의 중심에 섰다. 미국 공공부문에서 수여하는 권위있는 문화분야 시상식으로 꼽히는 케네디센터 공로상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돼 시상식과 헌정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바깥 나들이를 한 것이다. 올해로 44회째인 케네디센터 공로상은 고디 뿐 아니라 가수 베트 미들러와 조니 미첼, 시사코미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창설자 론 마이클스, 성악가 유스티노 디아즈 등 다섯명이다. 하지만, 아흔이 넘었음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등장한 최고령 수상자 고디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케네디센터 공로상 시상식과 헌정 공연은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정치이념이 다른 수상자들과의 대립, 코로나 대유행 등으로 지난 4년동안은 이 전통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다 올해 복원된 셈이다.

5일 열린 케네디센터 공로상 수상자 축하 콘서트에 참석한 질 바이든 여사가 청중들의 손뼉에 답하고 있다. 그 옆으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과 더글러스 앰호프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이날 시상자들과 만난 바이든 대통령은 고디에게 무한한 ‘팬심’을 드러냈다. 모타운 레코드가 만들어낸 음악들을 ‘미국의 영혼’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모타운의 음악이 날 얼마나 성장시켜줬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슈프림스와 템테이션스 등 모타운 출신 뮤지션들의 이름을 장황하게 거명하다가, “내가 휴대전화가 있다면 지금 당장 여러분들 앞에서 재생했을텐데”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네 시간 가까이 열린 시상식 축하 공연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 부부 부부, 카멀라 해리스 대통령과 남편 더글러스 앰호프 부부,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3부 요인들이 총출동했다. 공연의 대단원은 역시 고디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출동한 팝스타들의 공연이었다. 피날레 무대에 오른 모타운의 전설 스티비 원더가 ‘너는 내 삶의 햇살(You’re The Sunshine Of My Life)’과 ‘미신(Superstition)’ ‘그저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려 전화했을 뿐인데(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등 세계인의 히트곡들을 잇따라 부르자, 바이든 부부를 비롯한 청중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뼉을 쳤다고 디트로이트 프리프래스는 전했다. 모처럼 인종화합의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모타운을 통해 데뷔해 톱스타가 된 스티비 원더(1999년), 스모키 로빈슨(2006년), 다이아나 로스(2007년), 라이오넬 리치(2017년)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소속사 가수들에 기획사 사장이 수상한 셈이다.

베리 고디가 케네디센터 공로상 수상자로 소개되자 두 손을 번쩍 들고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오랜 시절 무대뒤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욕도 맛보다 이날 헌정무대의 주인공이 된 베리 고디. 그가 설립한 모타운 레코드를 빼놓고서는 팝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무명작곡가였던 그는 가족들에게 꾼 돈 800달러를 종잣돈으로 당시 자동차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작은 스튜디오를 세웠다. 모타운 왕국의 시작이었다. 마이클 잭슨(잭슨파이브), 다이아나 로스(슈프림스),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코모도스), 글래디스 나이트(글래디스 나이트와 핍스) 등 그가 발굴해서 키운 가수들, 결성시킨 걸그룹과 보이그룹들의 솔로 멤버가 나서 잇따라 수퍼스타에 등극하면서 미국 팝음악의 거인이 됐다. 대중들의 취향에 맞춘 신나고 흥겨운 사운드를 일컫는 ‘모타운 사운드’라는 고유명사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하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던 모타운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소속가수들과 결별하고, ‘모타운 사운드’가 좀 더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바뀌던 당시 음악 조류에 뒤처지면서 빠르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경영난을 겪던 모타운은 결국 1988년 MCA에 매각됐다. 이후 거대 음악레이블간의 M&A 과정을 거쳐 지금은 유니버설 뮤직 산하 흑인음악 전용 레이블로 명맥을 잇고 있다.

백악관에서 열린 44회 케네디센터 공로상 수상자 초청행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최고령 수상자인 베리 고디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리 고디의 집안 내력을 보면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미국 흑인음악의 제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팝스타들과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우선 총기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흑인 R&B의 전설인 마빈 게이는 베리 고디의 누나인 애너 고디와 결혼하면서 베리와는 처남-매부 지간이 됐다. 하지만, 본처를 두고도 고디의 조카딸 데니스를 임신시켜 아들을 낳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는 일종의 막장 스토리로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역시 가수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한 데니스는 본 남편쪽 시누이가 패션디자이너와 사업가인 티나 놀스다. 이 티나 놀스의 두 딸인 비욘세 놀스와 솔란지 놀스다. 언니는 잘 알려진대로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를 거쳐서 솔로로 대성공을 거뒀고, 동생 솔란지도 몇 해전 그래미상을 받으며 비로소 언니의 그늘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비욘세 입장에선 ‘집안 스토리’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셈이다.

모타운 레코드가 배출한 대표적인 수퍼스타 고 마이클 잭슨. /WSJ

하늘의 별이 된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도 고디의 가계도에 등장한다. ‘드림걸스’ 스토리에서와 비슷하게 고디는 디바로 등극한 다이아나 로스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드림걸스’에서는 실제 결혼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식적인 첫 부인은 셀마 콜먼이었다. 콜먼역시 모타운에서 활동했던 가수 출신이다. 베리 고디는 슬하 8남매를 뒀는데, 이 중 셋이 첫부인 콜먼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중 맏이 헤이즐 고디와 15년간 혼인 관계를 유지했던 전 남편이 마이클 잭슨의 친형 저메인이다. 마이클과 함께 형제그룹 ‘잭슨 파이브’ 멤버였던 저메인은 평생 ‘마이클 잭슨 형’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던 신세이지만, 한국에는 서울패밀리의 ‘이제는’의 원곡을 부른 가수로 알려져있고 실제로 마이클 잭슨보다 앞서 한국을 찾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베리 고디와 저매인 잭슨이 한 때 장인-사위 사이였으니, 그 기간동안 아미클 잭슨은 ‘사돈총각’이었던 것이다. 그의 가계도 자체가 모타운의 인맥 네트워크와 혼맥으로 얽혀 있는 셈이다.

모타운이 배출한 대표적인 팝의 디바. 다이아나 로스. 영화 드림걸스에서 비욘세가 연기한 '디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리 고디의 선조대에서 나온다. 그가 지미 카터(97) 전 대통령과 실제로 친척간이라는 점이다. 그의 집안 성인 ‘고디’는 실제로 지미 카터의 외가쪽 성이다. 베리 고디의 할아버지는 제임스 고디라는 이름의 백인 농장주와 흑인 여성 노예 사이에 태어난 혼외자였다. 이 농장주 제임스 고디가 본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즉 혼외자의 이복형제를 뒀는데, 그가 바로 지미 카터의 외할아버지이다. 촌수 따지는게 상당한 고차방정식이지만, 동일한 항렬의 먼 집안 친척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베리 집안의 가계도에는 미국의 질곡의 역사의 흔적도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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