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홍남기, 끝까지 잘해 달라" 발언의 속사정

김혜지 기자 2021. 12. 11.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新세종실록] 사실상 '강원도지사 불출마' 당부
오미크론 발 리스크↑..컨트롤타워 사수 의도도
홍남기 부총리로부터 첫 정례보고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 2018.12.12/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경제 성공을 위해 임기 마지막까지 역할을 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한 이 같은 당부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관가에서는 이 한 마디로 홍 부총리가 문재인 정부의 '순장조'로 확정됐으며, 이듬해 2월쯤으로 예상됐던 강원도지사 출마와도 거리가 멀어졌다는 말이 무성하다.

또한 홍 부총리는 아들의 서울대병원 특혜 입원 의혹으로 최근 정치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 레임덕 우려를 불식하고자 경제 수장인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 줬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11일 정부 등에 따르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코로나 상황 속 경제 성공을 위해 임기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역할을 잘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홍 부총리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보고한 자리에서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홍 부총리는 공직사회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강원도지사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줄곧 떠돌았다. 지난 4월 대정부질문 당시 야당 의원이 홍 부총리에게 직접 출마 의향을 물을 정도로 가능성은 꽤 높게 평가됐다.

홍 부총리는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란 '춘천 토박이'다. 부총리 부임 이후 출입 기자들에게 주는 명절 선물로 매번 퇴계농공단지에서 만든 닭갈비를 고를 정도로 고향 사랑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총리 출신으로서 도지사에 도전하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있었지만, 그의 꾸준한 고향 사랑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지난달 말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1월22일 기자 간담회에서 국무위원 출마에 따른 개각 가능성에 대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언급했으며, 지난 7일에는 "(국무위원들은) 정부 임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홍 부총리에게 선거 불출마를 당부한 셈이다.

내년 6월 선거에 출마하려면 공직자는 90일 전, 즉 3월3일에는 사퇴해야 한다.

홍남기 부총리. 2021.12.8/뉴스1

이에 따라 홍 부총리는 현 정부 순장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리더와 끝까지 함께하는 참모를 순장조라고 하는데, 추후 정치 경력에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보통은 순장조가 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홍 부총리는 이달 아들의 특혜 입원 의혹에 휩싸이면서 위기에 몰렸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들의 평가도 부쩍 박해졌다. 지난 5일 한 시민단체가 홍 부총리를 직권남용·업무방해·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신임하는 성격의 발언을 내놓은 건, 선거 불출마를 요청하려는 목적임과 동시에 임기 끝까지 경제 운용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우리 경제는 이달 들어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상태다. 공급망 차질과 물가 급등,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우려에 코로나 재확산까지 더해지면서 향후 성장 경로에 먹구름이 짙게 꼈다.

까딱 잘못해 정책 운용에 빈틈이 생길 경우, 요소수 대란 같은 위기가 다시 찾아온대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아울러 홍 부총리는 올 들어 공직 사회 내에서 무리한 정치권 요구를 물리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맡아 왔다. 가장 최근에는 초과 세수 활용 방안과 관련해 여당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동력을 꺾고 소상공인과 손실보상 비(非)대상 업종에 재원을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치권 압박에도 굳건히 중심을 유지해 온 홍 부총리가 돌연 경제 수장직을 내려놓으면 자칫 경제 컨트롤 타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기재부 외 부처 관계자는 "부총리가 이미 작년에도 사표를 제출한 적 있지 않나"라면서 문 대통령의 발언이 불미스러운 의혹에 따른 사임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icef0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