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 골프치고 완전 망가진 이유 [라이프&골프]

정현권 2021. 12.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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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골프] 85-84-90-95.

친한 골프 동반자가 나에게 보여준 연속 나흘간의 골프 스코어다. 사흘째부터 스코어가 푹 떨어졌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스윙 감각이 올라 점수가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런지 몰라. 희한한 스코어가 나오니 마지막엔 가방 싸서 뛰쳐나오고 싶더라고."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골프 일정으로 기대에 부풀었지만 정작 스코어엔 속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골프장 난이도 차이에다 날씨도 변수인 만큼 실망할 필요까진 없다면서 달랬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프로선수에게도 연속 나흘 경기는 벅찬 일정입니다. 중간중간 샷을 가다듬고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해야죠."

김명선 한국체대 특임교수는 프로선수도 4일간 경기를 위해선 엄중한 자세를 견지한다고 강조한다. 며칠 전부터 연습은 물론 몸과 마음을 철저히 경기 모드로 세팅한다는 것.

당일 경기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가까운 연습장에서 개선한다. 프로선수는 그날 우드가 불만족스러웠다고 해서 우드만 연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경기 도중 흡족했던 클럽 위주로 번갈아 연습하면 저절로 우드 스윙이 돌아온다는 것. 우회적으로 스윙을 바로잡는 방식이다.

경기 전에는 연습 라운드를 통해 코스를 파악해 매니지먼트 전략을 짜고 음식도 조절하면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들뜬 마음에 소풍 가듯 클럽과 가방을 싸서 들고 나가는 아마추어와는 다르다.

그는 먼저 강릉 소재 골프장에서 1박2일 골프투어를 진행했다. 첫날 오후 라운드를 마치고 바닷가 횟집에서 음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다.

골프텔로 돌아와 함께 놀다가 자정께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7시 30분에 둘째 날 라운드를 돌았다. 첫날 코스를 익힌 덕분인지 스코어를 1타 줄였다.

차를 몰고 밤 8시께 귀경해 아침 8시 중반 시간대에 경기도 여주의 골프장에서 다른 동반자들과 사흘째 골프를 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이른 아침 운전대를 잡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에 두껍게 옷을 입어 스윙 감각이 확 떨어졌다. 백 스윙과 피니시 과정에서 몸통이 제대로 회전하지 못했다.

평소 티샷을 하면 줄자처럼 선을 그리며 나가던 공이 연속 슬라이스를 내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슬라이스를 잡으려다 이번엔 팔로만 스윙을 하면서 악성 훅이 발생했다.

평소 탄탄한 80대 초반의 고수가 보기 플레이어로 급전직하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흘째 사달이 나고 말았다.

이날 골프장은 포천이었다. 전신이 쑤시고 감기 기운마저 돌았다. 다행히 동반자 차를 이용했지만 9시 티오프 시간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날 스코어 카드를 필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OB(Out of bounds)와 페널티 구역(해저드)으로 각각 3개의 공을 날려보냈다. 그린에서도 3퍼트 일쑤였다.

올해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체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몸살로 드러눕고 말았다.

"경험상 동계훈련을 갔다 온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무너져 옵니다. 어쩌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김 교수는 비행기를 타거나 장거리 운전으로 누적된 피로에다 매일 27~45홀을 강행하면 체력이 못 버틴다고 지적한다. 프로선수도 동계훈련 때는 하루 18홀이 아닌 보통 9홀만 소화한다고 전한다.

흔히 아마추어들이 동계훈련이라며 며칠간 동남아나 남부지역 골프투어를 다녀온 후 골프가 망가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 샷을 점검하지 않고 연일 골프만 하다 보니 미스 샷이 누적되고 체력도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골프투어의 경우 하루 27홀이나 36홀, 심지어 당일 무제한 라운드도 있다. 욕심이 앞서 무리하게 라운드를 추가한다.

골프를 끝낸 후 저녁 음주에다 마사지까지 더하면 골프 멘탈에서 완전 멀어진다. 매일 체력을 소모하니 갈수록 스코어는 망가진다.

"골프투어를 해도 하루 18홀이 적당합니다. 무리하게 욕심내지 말고 주위의 명소도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게 좋죠."

김 교수에 따르면 골프에다 음주, 게임(포커 등)까지 하는 극한 일정에서 스코어가 망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골프투어가 아니라 철인 경기나 다름없다.

아마추어가 동계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려면 교습가나 프로선수가 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절제된 분위기에서 레슨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지난달 사흘 연속 골프를 한 적이 있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동타, 마지막 날은 7타를 더 쳤다. 체력 한계를 실감했다.

"여건이 허락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골프가 가장 좋은 것 같아. 기다리는 설렘이 있고 진지하게 골프에 임하기 때문이지."

한때 일주일에 3번 정도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동반자가 한 말이다. 젊은 날엔 골프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강행군을 했는데 세월엔 장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더구나 요즘엔 한번 나가는 골프 비용이 30만원에 달한다. 비용, 체력, 골프의 소중함을 감안하면 골프를 많이 한다고 능사가 아닌 것 같다.

적은 횟수라도 애정과 정성을 들이는 골프가 소중하지 않을까. 설렘과 간절함, 진지함이야말로 골프가 주는 소확행이다.

"신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단 하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영원불멸은 너무나 권태롭고 소중함을 망각하게 한다."

어느 철학자의 말이다. 무한정 골프보다 애정 어린 한 번의 골프가 낫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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