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진짜 경제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정원석 경제정책부장 2021. 12. 1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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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으나 성장이 빠르게 회복되고 분배지표 개선도 지속되고 있다. 내년에도 소비, 투자, 수출의 고른 증가로 회복세를 이어갈 것."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했다는 ‘말씀 내용’을 접하고 ‘그린북’을 펼쳐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매년 8회 발표하는 미국 경제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을 본뜬 기획재정부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은 매월 발표되는 정부 공식 경기진단서다.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의 경제 현실 진단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견조한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고용이 큰 폭으로 증가했으나, 대면 서비스업 등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및 공급망 차질 등으로 회복 속도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12일 발표된 ‘11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기재부는 ‘서비스업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우려’, ‘회복 속도 둔화 가능성’ 등을 걱정하고 있었다.

각종 경제 지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자화자찬식 해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집권 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017년 3.2%→2018년 2.9%→2019년 2.2%→2020년 –0.9%’로 뚝뚝 떨어질 동안에도 문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앞서 가는 회복세”라는 말로 퉁쳤다. 지난 2010년 이후 10년간 평균 성장률이 2%에 이르지 못하는 프랑스(1.42%), 독일(1.97%), 이탈리아(0.27%), 일본(1.28%) 등보다 성장률이 높다는 게 대통령의 말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대통령의 낙관적인 경제 상황 인식과 달리 그린북을 통해 되짚어본 지난 4년 간 우리 경제는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53개월 간 발표된 그린북의 경기진단을 전수조사한 결과, ‘불확실성 확대(또는 상존, 지속)’가 언급된 횟수는 31회에 이르렀다. 2018년 7월 처음 나온 ‘불확실성’이라는 표현은 2020년 1월까지 19개월 연속 등장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위험요인 상존’(23회)이었다. 경기 후퇴가 우려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하방 리스크’가 언급된 횟수도 6회에 이르렀고, ‘생산, 투자, 수출 등 지표가 부진하다’고 언급된 횟수도 10회나 됐다.

반면, ‘경기(또는 경제)가 회복기에 진입했다’는 표현이 등장한 횟수는 17회, ‘경기가 개선됐다’는 언급은 3회에 불과했다. 지난 53개월 동안 그린북에 2회 이상 등장한 경기진단 관련 키워드 100개를 분석한 결과, ‘경기 낙관론’으로 해석되는 문구의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각종 경기지표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경제관료들은 우리 경제를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현재와 미래의 경기흐름을 보여주는 경기선행·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방향은 2017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3년간 경기수축을 가르키는 우하향(右下向)으로 전개됐다, 경기확장을 가르키는 우상향(右上向)은 작년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 1개월에 불과했다. 그린북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31개월 동안 등장한 것은 경제 현실을 외면할 수도, 대통령의 자화자찬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도 없는, 경제관료들의 균형감각(?)이 발현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내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대선 후보들은 모두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외친다. 이 약속이 지켜지려면 경제 현실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경제 현장에서 취업자 감소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과 동 떨어진 인식을 고집한 문재인 대통령을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현실 경제 작동 원리로 자리 잡은 정통 경제학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태도는 더욱 좋다.

대통령이 가짜 경제학에 물들면 국민의 삶이 피폐해진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아집으로, 터키 리라화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없는 통화로 만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리라화 가치가 지난 몇 년 간 계속 떨어지는데도, 그는 금리인하를 밀어붙였고, 이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부 장관을 내쫓았다. 자기 공약이 경제 원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고집이,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라는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 넘기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경제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면, 심각하게 의심해봐야 한다. ‘가짜 경제대통령’을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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