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PD의 방송 이야기]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김진호 2021. 12.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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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9년 세기말.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멸망을 예언하고, 밀레니엄 버그가 세상을 휩쓸 거라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만민중앙교회가 MBC를 습격하고,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되던 그 시절. 한 고등학교 축제 현장이다. 나는 단짝과 가요제 사회를 보고 있었다. 친구의 끼는 대단했다. 뛰어난 말솜씨에 옆 학교 여학생들은 배꼽을 잡았다. 나는 그가 필시 대한민국을 휘어잡을 코미디언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예능의 길로 들어선 건 필자고, 친구는 희극 대신 정극을 택했다. 그가 바로 얼마 전 청룡영화제 인기상을 받은 배우 구교환이다.

대세 중의 대세다. ‘DP’ ‘킹덤 아신전’ 등 넷플릭스 히트작의 성공을 이끌었고, 인기상을 안겨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 흥행에도 큰 역할을 했다. ‘지옥’으로 세계를 놀랜 연상호 감독은 그를 한국의 호아킨 피닉스라 극찬했다. 결코 혜성처럼 등장한 건 아니다. 독립 영화 감독이자 배우로 십 수년간 내공을 쌓았다. 대중에게 알려진 건 2016년 영화 ‘꿈의 제인’으로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었을 때다. 지금은 강동원, 조인성, 정해인 등 당대 최고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필자뿐 아니라 방송가에도 신기한 인연(因緣)이 많다. ‘모르모트PD’는 송중기와 대학 동창이고, 배우 서이숙씨의 친구 아들은 임영웅이다. 회사 본부장님은 배우 이영애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프로그램까지 같이했다(역시 될 사람은 된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란 게 있다. 할리우드 배우 대부분이 두세 단계만 걸치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고, 여섯 다리를 건너면 세상 누구나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법칙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되려면 500겁(劫)의 세월이 쌓여야 한다고 한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곁에 있어주는 동료들에게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락이 된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관악산 정기 받은 배움의 전당’에서 ‘성실·근면·봉사’를 교훈 삼아 같이 꿈을 키운 친구. 조만간 회포를 풀기로 했는데 적잖이 기대가 된다. 그가 주연을 맡은 ‘꿈의 제인’은 아프지만 따뜻한 영화다. 거식증으로 말라가는 트랜스젠더 제인은 가출 청소년들을 모아 보살핀다. 그리고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이런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하며 위로를 건넨다(물론 저 대사가 ‘불행’이 아닌 ‘행복’이면 더 좋겠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고(故) 피천득 선생의 수필처럼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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