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자존감·민족주의는 늘 옳은가.. '고정관념'에 도전한 올해의 책 10

이기문 기자 2021. 12.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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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선정했나

코로나 사태로 2년째 계속된 ‘뉴 노멀’은 그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치에 대한 자성(自省)을 불러왔다. 조선일보 Books의 2021년 ‘올해의 책’은 올 한 해 Books와 문화부 지면이 주목했던 책 중에서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큰 흐름을 반영해 선정했다.

태양광·풍력발전, 채식주의 등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는가? 미국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은 우리의 선입견에 의문을 던진다. 자존감이 높은 것이 반드시 좋은가? 윌 스토의 ‘셀피’(글항아리)와 정유정 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은 한동안 거세게 불었던 ‘자존감 열풍’에 브레이크를 걸며 자아와의 적절한 거리 두기를 말한다. 소년원 아이들은 악한가? 마이너리티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은 소년원에서의 책읽기 수업을 다룬 ‘소년을 읽다’(사계절), 아시안 차별을 짚은 ‘마이너 필링스’(마티), 말 더듬는 소년의 강점을 도닥이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책읽는 곰)가 공통적으로 힘주어 말하고 있는 주제다. 임진왜란을 ‘근대 이전 한·중·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으로 넓혀 보자는 김영진 국민대 교수의 시도도 이 ‘낯설게 보기’의 흐름에 한몫한다.

본지 기자 13명과 지난 한 해 Books에 글과 통찰을 아낌없이 선사한 북칼럼 필진 5명, 출판·문학 평론가 6명 등 24명이 3권씩 추천하고 Books 팀이 최종 선정했다.

/이태경 기자

[부서지고 돌아가더라도 강물은 끝까지 흐르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지음|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52쪽|1만3000원

말을 더듬는 아이는 학급 발표를 망치고 낙심한다. 그런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는 강가로 간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굽이치고 부서지고 돌아갈지언정, 강물은 끝내 나아가 어딘가에 당도한다. 아이는 다시 발표 연단에 선다. 더듬는 말은 그대로지만, 말하는 이는 달라져 있다. 아이는 말문이 막혔을 때 강물을 생각하며 끝까지 말한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올해의 그림책’으로 꼽았다. 캐나다 시인인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펼쳐진다.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 그림이 아이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다. 아픔을 치유하는 주인공 모습이 폭넓은 공감을 안기면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선 20·30대가 전체 구매자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올해 4만부 이상 판매됐고, 교보문고 유아 부문 베스트셀러 전체 5위를 기록했다. /이기문 기자

[근면 성실 ‘모범 소수자’ 한국계 미국인의 비애]

마이너 필링스|캐시 박 홍 지음|노시내 옮김|마티|276쪽|1만7000원

지난해 미국서 출간한 이 에세이집은 코로나 사태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한 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저자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국내에선 1만부 팔렸으며, 3040 여성이 주로 읽었다.

한국계 시인인 저자는 “근면 성실한 ‘모범 소수자’로 불리지만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없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예민한 감각으로 풀어낸다. “백인을 정점으로 하는 인종 서열의 피라미드에 우리도 암묵적으로 동조해오지 않았는지. 중간쯤 되는 ‘모범 소수자’의 위치에 만족하면서 피라미드 아래쪽 이들을 차별해오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는 추천 평이 있었다. /곽아람 기자

[”넌 특별해” 칭찬에도 MZ세대, 왜 불행할까]

셀피|윌 스토 지음|이현경 옮김|글항아리|488쪽|2만2000원

‘MZ세대’는 단연 올해 전 세계의 화두였다. 집단의 규범을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들의 특성은 기성세대들에게 충격과 의문을 던졌다. 런던에서 사는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MZ세대의 ‘자존감 과잉’을 꼭 긍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넌 특별하고 훌륭하다”는 부모의 칭찬이 오히려 MZ세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평범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소셜미디어에 끊임없이 ‘셀카’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완벽한’ 상태를 과시하도록 이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출판사 편집장은 “‘자존감을 키우라’는 뻔한 책들보다는 이를 비판적이고 심도 있게 다룬 이 책이 더 매력적이라 생각해 출간했다”고 밝혔다. 30~40대 여성이 주로 읽었고, 50대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봤다. /곽아람 기자

[소년원에 간 선생님… 罪 아닌 ‘소년’에 주목]

소년을 읽다|서현숙 지음|사계절|224쪽|1만3000원

“나도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소년이 이런 삶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이 사회와 사회의 어른들이 소년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 욕망이 가는 길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교정·교화가 아닐까. 소년원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가 소년원에서 문학 수업을 한 경험을 기록한 책이 어두운 내용일 거란 선입견을 깨고 1만2000부 팔렸다. 저자가 수업을 통해 죄(罪)가 아닌 사람을 읽어내는 과정을 따라가자면 ‘소년원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희석되며, 마음속엔 오롯이 ‘소년’만 남는다. “선생님,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라고 수줍게 말 건네는 아이들. 출판 평론가 표정훈씨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삶에서 지닐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일깨워준다”며 추천했다. 4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샀다. /곽아람 기자

[올해 20만명 탑승한 철학자 14人 잇는 열차]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지음|김하현 옮김|어크로스|524쪽|1만8000원

급행(익스프레스)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철학자 14명을 연결하는 완행열차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소로처럼 보는 법’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같은 이름의 역을 거친다. 빌 브라이슨처럼 신변잡기와 유머 등을 수다스럽게 떠들다가 철학자에 대한 날카로운 해설로 넘어간다. 철학자를 향해 바로 돌격하지 않고, 풍경을 바꿔가며 관심을 갖게 한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 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소로) “나는 명예가 있는 자와 헛되이 그들을 찬양하는 자에게 침을 뱉는다.”(에피쿠로스)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가득한 이 열차에 올 한 해 20만명이 올라탔다. 올해 교보문고 판매량 5위였다. /양지호 기자

[’스릴러 여왕’의 귀환… 흡인력이란 무엇인가]

완전한 행복|정유정 지음|은행나무|524쪽|1만5800원

이렇게 행복을 말하는 여자가 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실패한 결혼의 증거인 전 남편은 실종되고, 새 남편이 전처에게서 얻은 아이는 사고사를 당한다. 잇따른 사건에 의문을 품은 형제가 진실을 추적한다.

악(惡)의 본성을 탐구하는 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스릴러의 여왕’이란 칭호를 얻은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인 서스펜스. 500여 쪽을 단숨에 읽게 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독자는 열광했다. 6월 출간돼 20만부를 찍었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전작들에 이어 나르시시스트(자기도취형 인간)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진다. 소설은 말한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네 행복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행복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이기문 기자

[”韓中日 12년 외교전” 임진왜란의 재평가]

임진왜란 | 김영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948쪽 | 4만3500원

‘7년 전쟁의 국난극복사’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이 책은 임진왜란을 ‘근대 이전 한·중·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으로 시각을 넓혔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실제 전쟁이 벌어진 기간은 2년 정도였고, 1589년부터 1600년까지 ‘12년 동안의 외교전’이 펼쳐졌다고 본다. 이 분석 결과 현재에도 유효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정학적으로 침략의 위험에 놓여 있던 조선(한반도)은 명나라(특정 동맹국)에 의존한 안보가 어느 정도 효과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세력 변화로 일본(신흥 국가)이 대두해 곤혹스런 선택에 놓였고 국론이 분열됐으며, 결국 보수적인 선택으로 인해 일차적 침략 대상이 됐다. 비슷한 현상이 병자호란을 거쳐 6·25까지 이어졌다. 주변국 중에서 양자택일을 하는 것은 위험하며 다수의 지원 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탈원전, 과연 정답일까… 지구 망치는 환경주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노정태 옮김|부키|664쪽|2만2000원

탄소 저감을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야 하고, 채식을 해야 하며, 기후변화로 지구가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는 책들이 잇달아 나온 해였다. 30년 이상 환경 운동가로 활동해 2008년 타임(Time)이 ‘환경 영웅’으로 꼽은 저자는 이 책에서 흔히 ‘친환경’이라 여겨지는 대책에 이의를 제기한다. 기후변화는 막아야 하지만, 다수가 외치는 그 방식이 맞는가.

태양광·풍력발전은 효율과 신뢰도가 모두 낮다. 생태계 파괴도 필연적이다. 채식주의로 줄일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은 미미하다. 저자는 환경 종말론에 빠진 ‘기후 양치기 소년’의 착각을 지적하며 차세대 원전(原電) 같은 현실적 해법에 주목한다. 5만부 이상 나갔는데, 4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샀다. /양지호 기자

[”삶은 점점 더 나아진다” 스티븐 핑커의 희망론]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지음|김한영 옮김|사이언스북스|864쪽|5만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의 신작은 인류 문명이 우상향(右上向)한다는 믿음을 다시 설파한다. 그의 경전(經傳)은 데이터다. 삶의 질이 더 나아졌음을 보여주는 표·그래프만 75개에 달한다. “일화는 추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오늘 나쁘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에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비관주의와 심오함을 혼동하지 마라. 문제는 피할 수 없지만 또한 해결할 수 있다.”

정치적 부족주의, 고착화된 양극화, 이어지는 코로나 유행으로 좋은 소식이 크게 없던 한 해였다. 그렇지만 핑커는 희망을 가지라고 이성에 호소한다. ‘빈 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벽돌책 장인(匠人)이라 불리는 그답게 이번 책도 두껍다. 읽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페이지는 더 빨리 넘어간다. /양지호 기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희생자’란 굴레 벗어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640쪽 | 3만3000원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단체가 자신들이 희생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비판조차 받지 않겠다는 것은 정당한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올라선 한국은 언제까지 ‘희생자’ 지위에 연연해야 하는가? 서양사학자인 저자는 이스라엘과 폴란드에서 한국·일본에 이르는 세계사적 탐색을 통해 이런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란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억 서사’다. 문제는 이 이데올로기가 ‘내 기억만 옳다’며 상대방의 기억을 배제한다는 데 있다. 개인의 행위와 무관하게, 자기 민족이 희생자임을 내세워 ‘집합적 무죄’를 주장한다. 희생자라는 의식에 매몰되지 말고 과거의 복잡다단한 기억을 직시해야 혐오와 적대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누가 선정했나 (가나다순)

기자 곽아람, 김성현, 박돈규, 신동흔, 양지호, 어수웅, 유석재, 이기문, 이혜운, 장근욱, 정상혁, 채민기, 최보윤

Books 필진 김동조 트레이더, 박소령 퍼블리 대표, 우석훈 경제학자, 장강명 작가, 장동선 뇌과학자

출판 전문가 노태훈·박혜진 문학평론가,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표정훈·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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