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이 콩밭에 간 까닭

채인택 2021. 12. 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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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읽을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폴 너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더해 각종 변이까지 줄이어 등장해 인류를 위협한다. 이런 팬데믹 시대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저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생명에 다가선다. 세포·유전자·진화·화학·정보라는 다섯 접근 통로 중 유전자에 집중한다. 세포가 분열해 증식·생존하면서 유전정보를 복제·전달해 자신과 닮은 자손을 계속 남기는 ‘세포 주기’의 핵심 조절인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생명과학자답다.

지은이는 ‘생명은 정보’임을 강조한다. DNA 정보는 생명의 화학작용을 조절하고 끄거나 켜는 기능도 한다. 인간의 수만 개 유전자 중에서 항상 켜진 건 4000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점멸한다. 인간의 잠재력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화학 반응은 생명으로서 세포의 표현’이라는 루이 파스퇴르의 말은 지은이를 매료시킨 과학 잠언이다. 세포의 ‘대사’가 바로 다양한 화학반응이다. 알코올·발효식품뿐 아니라 수많은 의약품·화학물질의 원천이다.

지은이는 유전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인간 유전자 수만 개는 성별·인종·종교·사회계층과 상관없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모든 인간이 이렇게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자의 진지한 자세도 중요하다. 지금은 첨단학문의 대명사인 유전학은 사실 소박하게 출발했다. 19세기 가톨릭 사제 그레고어 멘델이 완두콩을 7년간 관찰하고 실험해 유전 현상을 발견한 게 시초다. 지은이는 1981년 멘델의 연구 현장인 체코 브르노의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을 찾았다. 콩밭은 생각보다 컸고 멘델은 그곳에서 완두 식물을 1만 그루까지 관찰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다양성을 지닌 자연에 과학자가 다가서는 방법은 이러한 끈기와 집념, 그리고 겸손이었다.

이처럼 생명의 화학적·정보적 이해와 경험을 축적할수록 생명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접근하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생명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비롯한 인류에 대한 도전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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