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토종 득점왕' 제주 주민규 "5명의 '은인들' 덕에 오늘의 나..내년엔 2연속 득점왕·우승까지"

황민국 기자 2021. 12.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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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재성·조원희·김영광 형들 덕에
1부 리그 공격수로 자리 잡는 행운
정경호·정조국 코치 노하우 전수
‘원샷 원킬’ 골 사냥법 눈 뜨게 해
모기업 SK엔 “조금만 더 투자를”

K리그1 득점왕 제주 주민규가 10일 서울 정동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자신이 토종 득점왕으로 성장한 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축구에서 골잡이는 누구보다 외로운 자리다. 골을 넣으면 찬사를 받지만, 반대로 골이 터지지 않을 땐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나홀로 고립됐다는 외로움은 선수를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든다.

다행히 주민규(31·제주)는 전자에 가까웠다. 좌절하는 대신 주변에 손을 내밀어 하나라도 배우려 노력했던 그는 이제 K리그 최고의 골잡이로 우뚝 섰다. 올해 22골을 터뜨리며 5년 만의 토종 득점왕에 올라 K리그1(1부) 대상 시상식에서 2관왕(최다득점상·베스트일레븐)을 차지했다. 주민규는 10일 서울 정동에서 기자와 만나 “프로에 데뷔했을 땐 내가 공격수, 그것도 1부리그 득점왕에 오를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며 “이 자리에 오르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득점왕으로 만든 다섯 사람

주민규가 외로움을 잘 견딘 것은 걸어온 길이 그만큼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이듬해 2부리그인 K리그2 고양(해체)에 번외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는 “대학 시절엔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 착각했다”고 떠올렸다.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주민규는 자신보다 축구를 잘하는 이라면 배움을 청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2015년 창단팀 서울 이랜드FC에서 김재성(현 인천 코치), 조원희(방송인), 김영광(성남) 등을 만나 공격수로 변신한 것이 대표적이다. 원래 미드필더였던 그는 그해 23골이나 터뜨리며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일깨웠다.

주민규는 “세 형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프로 선수로 계속 뛰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김)재성형에게는 밥알 하나까지 셀 정도로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조)원희형에게선 프로 선수로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운동 비결을 훔쳤다. 소속팀 훈련보다 한 시간 먼저 나가고, 훈련이 끝나면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얼음물에 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키퍼 (김)영광이형은 슈팅 훈련을 기꺼이 받아주면서 어떻게 해야 골키퍼가 막기 힘든지를 직접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2부리그에서만 통한다는 꼬리표를 뗀 상주 상무 시절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상주에서 패싱 게임과 컨트롤의 미학에 눈을 떴다. 주민규는 “정경호 코치님이 공격수에게 필요한 축구 전술의 디테일을 가르쳐줬다”면서 “한 수 높은 1부리그에 필요한 스타일을 몸에 익히니 슈팅도 달라지더라”며 웃었다.

주민규가 1부리그 득점왕으로 성장한 마지막 조각은 역시 마지막 토종 득점왕이었던 정조국 제주 코치의 노하우였다. 원래 헤딩을 꺼리던 주민규는 정 코치와 함께 세부 공격 전술을 준비해 K리그1 최다인 7개의 헤딩골을 넣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 코치 역시 현역 시절 헤딩에 능숙한 선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주민규는 “남기일 감독님이 측면 크로스로 득점을 노리는 패턴을 준비해주셨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 골키퍼가 예측하기 힘든 헤딩이었다. 그래서인지 정 코치님이 득점왕 상금을 절반으로 나누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내년에도 득점왕은 나야 나

정상에 오른 이들의 숙제는 역시 수성이다. 주민규도 내년에 올해를 웃도는 활약으로 득점왕 2연패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39년 K리그 역사에서 토종 골잡이로 2년 연속 득점왕에 오른 선수는 아직 없다. 주민규는 “지금은 한국을 떠난 데얀이 3년 연속 득점왕(2011~2013년)에 오른 것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내가 내년에도 득점왕이 된다면 국내 선수로는 첫 사례”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규가 2년 연속 득점왕을 벼르는 것은 제주 팬들에게 우승컵을 안기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간 K리그는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가 우승컵을 다투는 양강 구도였다. 주민규는 모기업 SK가 제주에 조금만 투자를 늘린다면 자신이 골 사냥을 책임지며 우승컵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주민규는 올해 구단과의 마지막 미팅 자리에서 “우승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주민규는 “올해 제주는 4위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조금만 더 투자를 늘려주시고, 제가 올해 활약을 유지한다면 우승도 가능하다. 하나로 똘똘 뭉친 제주가 얼마나 강한지 내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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