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로 샤브샤브를? 하얀 코 검은 돼지 '버크셔K'의 정체는?[권오균의 맛따라]

권오균 2021. 12. 10. 1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오균의 맛따라]
남원 동편제 마을서 맛본
국내 육종 고품질 돼지 버크셔K
지방에 수분 적고 pH 높아
부드러운 듯 쫄깃한 맛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도 극찬
돈가츠, 생햄, 샤브샤브로
다양하게 맛본 이후에는
뱀사골, 정령치, 마을 탐방도

여행 쪽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어디 추천 좀”. 카톡 대화 중 얼마 전에 남원에 다녀왔다고 하니 질문이 쏟아진다. “지리산 다녀왔구나?” “아니” “판소리?” “아니” “춘향이?” “아니” “추어탕?” “아니” “그럼, 뭔데?” “버크셔K” “그게 뭔데?”

사실 K여행기자도 버크셔K는 처음 들었다. 생소한 만큼 호기심을 유발했다. 우선, 버크셔K를 논하기 전에 돼지 종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돼지는 요크셔다. 흔히 보는 살구색 돼지다. 번식력이 좋고, 덩치도 제법인 고마운 녀석이다. 까만 돼지 버크셔도 있다. 여기까지 읽고 ‘아~ 제주도 똥돼지가 지리산 자락 남원에도 있구나~’ 싶을 텐데, 버크셔K는 다르다.

▶ 한돈이라고? 다 같은 돼지가 아니라네

그럼 버크셔K는 뭘까. 한반도 돼지 생육의 역사를 잠시 살펴봐야 한다. 요크셔든 버크셔든 1900년 이후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원래 살던 돼지는 너무 작고 육질도 별로여서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일제가 선택한 용병은 버크셔였다. 버크셔는 코와 꼬리, 네 발이 하얗다. 육질이 우수하여 상품성이 있으나, 새끼를 덜 치고 사육 기간이 길다.

그래서 한반도에 들어온 버크셔는 돼지 농가에서 토종돼지 등과 잡종 교배됐다. 잡종 흑돼지는 온몸이 까맣다. 아무렇게나 잡종과 교배된 흑돼지는 육질이 순종 버크셔보다 떨어지지만, 생산성이 향상된다. 이 돼지들에 지명을 붙여 000 흑돼지로 팔리고 있다. 색깔이 검으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한국 땅에서 먹고 자라니 토종 흑돼지라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엄밀히 따지는 이들은 이를 ‘먹통 흑돼지’라고 칭한다.

버크셔K의 아버지 박화춘 박사(왼쪽)와 버크셔K로 샤퀴테리를 만드는 박자연 조아 대표. <제공 = 몽상공작소 정태겸 작가>

▶ 똘똘뭉쳐 한국형 버크셔 돼지 키우는 박화춘 가족

‘버크셔K’는 한국에서 버크셔 육종을 고수하는 박화춘 박사가 자부심을 담아 작명했다. K는 KOREA다. 육종이란 품종을 들여와 원형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육환경에 맞게 보완하는 작업까지 일컫는다. 박화춘 박사는 서울대 축산학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치고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일하다가 2003년부터 고향인 전북 남원에 돌아왔다. 2004년부터 가열감량과 pH 등을 따져 미국 버크셔 순위 10위 안에 있는 농가에서 집중적으로 선발 구입했다. 우수한 버크셔의 유전자원을 고유화했다. 혈종을 등록해서 관리하고, 돼지 5000여 두를 일일이 검사한다.

박화춘 박사는 “버크셔K는 수분이 많아 촉촉하고, pH가 높아 부드럽고,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고소하다”고 자부했다. 제대로 된 돼지를 키우겠다는 그의 의지에 가족 모두가 동참했다. 작은아들은 그와 생육을 맡았고 아내와 큰아들은 스페인 하몽 못지않은 맛있는 햄을 만든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2013년 ‘박화춘 박사의 흑돼지를 홍보하자’는 기획 아래 <하얀 코 검정 돼지 바크셔를 둘러싼 모험>이란 책을 펴냈다. 책에서 황교익은 박화춘 박사의 몸에서는 “항상 돼지 냄새가 난다”며 “이 냄새가 믿음으로 온다”고 적었다. 언론에 독설가로 소개되는 황교익이 홍보맨을 자처할 정도면 도대체 어떤 맛인가. 더욱 구미가 당겼다.

▶ 남원 동편제마을 휴락에서 버크셔K 4종 세트 냠냠

​버크셔K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산지 근처인 남원 동편제 마을 휴락에서 버크셔 4종 먹방 세트를 맛보는 일정이다.

버크셔 K 돈가츠.

우선 돈가츠다. 기사식당에서 나오는 고기가 얇고 튀김은 두꺼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기가 두툼한데, 수분이 많아 촉촉했다. 약간 덜 익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러웠다. 중간보다는 약간 더 익힌 스테이크처럼 느껴졌다. 보통 성인 남성이면 한 접시 먹으면 배부를 양이었으나, K여행기자는 두 접시를 먹었다. 복기해보니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일반 돼지보다 낮은 온도에서 잘 익는 버크셔K의 특징이 유효했다.

버크셔K 수육.

그리고 수육이다. 버크셔K의 진가는 튀긴 맛이 두드러진 구이보다는 촉촉함이 배가되는 수육으로 먹어야 발휘된다. 올레산과 리놀렌산 함량이 높아 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적색 근섬유가 많아 육질이 쫄깃한 특징이 잘 산다. 근섬유가 많아야 조리 후에도 수분과 육즙을 꽉 잡아서 맛의 풍미를 강하게 유지된다. 게다가 남원 스타일로 식탁에 반찬이 더해지니 금상첨화.

버크셔K 샤퀴테리.

다음으로는 요즘 인기 절정인 사퀴테리다. 3개월에서 3년까지 숙성한 사퀴테리는 빵에 치즈, 올리브 등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다.

살라미와 초비조는 앞다리를 3개월 숙성한다. 론지노는 등심을 1년, 꼴라뗄로는 뒷다리를 2년, 하몽은 뒷다리를 원형 그래도 3년 발효해 만든다. 90% 이상 업체에 식당에 납품한다. 일부는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박화춘 박사의 큰 아들이자 버크셔K로 육가공식품을 만드는 박자연 조아 대표는 “고기를 잘라 숙성하는 살라미와 초비조, 페퍼로니는 발효 기간이 짧고, 통으로 숙성하는 꼴라뗄로나 하몽, 잠봉은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유학파 권은중 셰프는 “이탈리아는 고기의 원재료와 지역을 강조하고 목숨까지 걸 정도”라며 “마치 검투사처럼 싸우며 전통과 지역을 지켜낸다”며 이탈리아의 풍토를 소개했다.

버크셔K로 만든 샤퀴테리는 와인을 음미하기에도 좋다. 다만, 부작용이 있었다. 다양한 사퀴테리를 뜯어먹다보니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되고, 와인도 풍미가 입안에 오래 남다 보니 다시 샤퀴티레를 찾게 되었다. 과도한 음주는 해롭다는 점을 알면서도 당하는 기분이다.

버크셔K 샤브샤브.

마지막은 샤브샤브다. 다소 의아했는데, 전날 숙취를 말끔하게 해소해줬다. 옆자리에서 김관석 충북대 축산학과 교수가 얇게 썬 샤브샤브용 버크셔K 고기를 날로 드셨다. 먹어도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한 절음 더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씹으셨다. 그대로 따라 했더니 어제 먹은 사퀴테리가 짠맛 없이 혀끝에 감돌았다. 촉촉함은 더욱 강렬했다.

선홍빛 고기가 주는 시각적 만족도 역시 상당이 높았다. 끓는 육수에 버섯, 고기와 함께 넣어 익혀 먹는데, 금방 익었다. 고기 맛이 담백했다. 건강하고 심심한 맛으로, 잡내는 없었다. 연 겨자나 수키 소스, 그리고 식탁을 채운 반찬과 함께 먹으니 풍성한 맛이 났다.

한국에는 생소하나, 흑돼지 샤브샤브는 일본 가고시마 지방에서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노무현과 고이즈미도 가고시마 지역 유명식당 백수관에서 먹었다고 한다.

▶ 핵꿀맛 버크셔K 맛 보고 지리산 풍경 둘러봐요

물론 먹으러 왔지만, 소화를 시켜야 했다. 동편제 마을은 둘러보기 좋은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갈 곳은 많으니 선택이 문제다. 3곳을 소개하자면 정령치, 뱀사골, 동편제 마을이다.

정령치 인근 고리봉.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다. 고개 꼭대기 정령치 휴게소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고 크게 무리 없이 지리산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뱀사골 계곡.

뱀사골은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길이 14km 골짜기다. 옥색 물빛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걷다 보면 눈도 심심하지 않고 계곡물 소리에 귀도 즐겁다.

동편제 마을 송흥록 생가.

동편제 마을을 ‘국악의 성지’이다. 지리산 기슭 운봉읍에 조성된 박물관에는 동편제를 완성해 가왕의 칭호를 받은 송흥록 선생의 생가가 있다. 기악, 정악, 명창들의 기증유물 등이 전시되어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음악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

▶잠은 어디서? 남원에는 안락한 농촌형 숙박 시설이 있다

배부르게 먹고, 신나게 돌아다녔는데, 잠은 어디서 자면 좋을까? 남원 동편제 마을 휴락은 마을의 청정 먹을거리와 편안한 휴식공간을 결합한 숙박시설이자 체험문화 공간이다. 높은 천장과 온돌, 미닫이문과 복도는 한옥에서 자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원 동편제 마을 휴락. <제공 = 몽상공작소 정태겸 작가>

2인실 2개, 욕실 1, 세면대 2, 화장실 2, 샤워실 1인 4일 2실 객실의 숙박요금은 18만 원이다. 2인 1실 객실은 9만 원이다. 밤에는 캠프 파이어도 할 수 있다. 고기 주문 가능하며, 의자와 테이블, 개인 집기류까지 제공된다. 비용은 2만 원. 80석 규모의 락(樂)은 평상시는 식당이다. 기업 연수와 체험 교육 때는 교육장으로 이용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용 요금은 1시간당 10만 원.

​[권오균 여행+ 기자]

남원 동편제 마을 휴락을 배회하는 고양이. '어서와, 남원은 처음이니?'라는 듯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다가오기도 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