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한 복판을 뚫은 K중소기업들.. 수소·전기차·바이오, '파격 대우' 받았다

김형준 2021. 12.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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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20여 곳에 10조원 투자"
수소연료전지 기업도 내년 진출
원천기술 유출·불공정 계약 우려도
사우디 얀부로 결집 중인 국내 중소기업

중동지역의 한복판에 최신 기술로 무장한 K중소기업 단지가 조성된다. 수소연료전지에서부터 전기차와 바이오, 로봇 등을 포함해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된 'K중기'의 잇따른 현지 진출이 확정되면서다. 중동 지역에 불어닥칠 K중기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점쳐진 이유다. 특히 K중기의 둥지가 중동지역의 맹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설 것이란 점에서 기대감도 상당하다. 이는 '석유 왕국'에서 탈피,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선 사우디와 첨단기술의 글로벌 저변 확대에 매진 중인 한국 기업의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 미래 기술 기업들, 사우디 얀부로 ‘집결’

10일 업계에 따르면, 20여 개 국내 기업들이 내년부터 사우디 서부에 위치한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 얀부 지역에 진출한다. 사우디 왕실위원회가 사우디국제산업단지회사(SIIVC)와 협약해 이곳에 '사우디-한국산업단지'(SKIV)를 조성하고, 최근 20여 개 기업들에 대한 투자 결정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얀부는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홍해와 인접한 산업도시다. K중기의 ‘홍해의 기적’도 꿈꿀 수 있게 된 셈이다.

얀부로 향하게 될 K중기에 SIIVC에서 제시한 최초 투자 규모는 10조 원 안팎. 이는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마련한 사우디 정부의 중장기 정치·경제·사회 개혁 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 2030’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투자다. 현지에 진출할 예정인 기업 관계자는 “산업단지 입주 및 조인트 벤처 설립 계약이 주된 내용이다”며 “미국과는 다소 껄끄러운 사우디 입장에선 신뢰도가 떨어진 중국이나 정체된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 생태계가 살아있는 한국 기업을 택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한국산업단지’ 얀부

투자 대상인 K중기의 산업분야도 방대하다. 수소전지 원천기술 보유 기업 가온셀을 비롯해, 줄기세포배양기술과 관련한 의료기기 생산시설 구축 계획을 가진 메디칸, 전기차 제조업체 이엘비앤티까지 에너지 및 수소와 전기차, 바이오 제약, 로봇 산업 기업들이 대부분 합작법인 형태로 합류할 예정이다.

물론, K중기의 사우디 진출 과정엔 우여곡절도 많았다. 현지 진출을 확정한 기업 관계자는 “2019년 말부터 사우디 진출을 타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여러 난관이 있었다”며 “그러나 탄소중립이나 미래 산업 발굴에 대한 의지가 컸던 사우디와 해외 시장 진출, 투자 유치에 시간을 더 지체하기 어려웠던 국내 중소기업들이 화상회의 등에서 만나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메탄올로 수소전지 제조', 원천기술 매력

현지 진출에 성공한 K중기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의 투자를 유치한 곳은 수소연료전지 원천기술 보유 기업인 가온셀이다. 가온셀 관계자는 “SIIVC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책정한 1차 투자금 가운데 가장 많은 7억8,000만 달러(약 9,200억 원)를 유치하고, 지난달 사우디 정부로부터 투자 승인을 받았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는 대로 현지에 20여 명의 직원을 보내 공장 설립 등 구체적인 사업 확장을 위한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가온셀은 기존 수소연료전지의 단점인 생산·저장·수송·배급 문제를 해결할 직접메탄올수소연료전지(DMFC)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수소가스보다 공급이 쉬운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해 3분 이내 배터리 고속충전이 가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가온셀 관계자는 "이번 사우디 진출로 그동안 DMFC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가격경쟁력과 시장 확보가 당장 가능해졌다"며 "향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시장을 선점할 경우, 이를 발판으로 북남미 등 신시장 개척까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2060년 탄소중립” 사우디 수소 드라이브, 왜?

K중기의 이번 중동 진출엔 탄소중립 실현에 나서겠다고 표방한 사우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사우디가 파격적인 대우까지 제시하면서 K중기와 손을 잡은 배경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에선 현재 에너지정책 방향 전환이 한창이다. 사우디의 이산화탄소 배출량(2019년 6억1,000만 톤)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1인당 배출량(1만8,000㎏)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에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 10월 ‘사우디 그린 이니셔티브 포럼’에서 자국 내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단 목표도 제시했다.

사우디는 또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으로 변신할 계획까지 밝힌 상태다. 최근 사우디 에너지부는 "2030년까지 400만 톤의 수소 생산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이는 수소산업에 먼저 뛰어든 한국 기업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사우디의 가정용 연료전지 수요가 높아 현지에서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 한국 기업의 시장 진출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 큰 투자'에 가린 원천기술 유출 경계해야"

다만, 중동지역 진출 시 유의해야 될 사안도 적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우리 정부나 기관을 통하지 않은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국내 경쟁력 약화나 원천기술의 유출 가능성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우디 진출 기업들 중에는 일부 제조기술 이전 등 조건도 붙은 것으로 안다”며 “불안한 중동 정세와 양질의 인력 고용이 가능할지 등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라며 “정부도 기업과 직접적으로 맺은 ‘통 큰 투자’ 이면에 불공정한 계약이 있는지, 기업의 안전은 보장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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