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거룩한 영혼과 세속적 욕망..황금의 두 얼굴

김유태 2021. 12. 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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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예술가를 매혹한 불멸의 빛 /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지음 / 고선일 옮김 / 미술문화 펴냄 / 1만8000원
캉탱 메치스 1514년작 `환전상과 그의 아내`.
영어로는 골드(gold), 원소기호 'Au'. 노란색을 띠고 다른 금속과 혼합이 쉽다.

고대엔 송아지상과 부처 조각상의 주원료로 쓰여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기능을 담당했고, 중세엔 이것으로 만든 성배를 찾아 두 문명 간에 참혹한 전쟁까지 벌어졌다. 현대에 들어서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이전 자본주의 시스템의 준거점이었고, 지금도 크고 작은 위기 때마다 이것의 값이 '번쩍'거린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사랑했던 광물, '금' 얘기다.

신작 '금, 예술가를 매혹한 불멸의 빛'은 검정과 빛으로 서양미술사를 각각 재조명했던 저자의 신작이다. 금의 인류학적 의미를 되짚으면서 예술사에서 금이 차지하는 위상, 나아가 인간이 금을 통해 어떠한 욕망을 추구하려 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금이라는 소재로 장르를 다시 쓰려는 시각과 열정이 놀랍다.

수천 년 역사에서 금은 어떤 의미였을까.

금처럼 이중적인 광물은 인류사에 없었다. 금은 먼저 고귀한 영혼의 상징이었다. 무덤에 들어가면서도 금으로 만든 가면을 썼고, 봉분에 귀금속을 함께 묻어 내세의 안식을 도모했다. 치솟는 금 수요에 인류는 인공적인 금을 제조하려 했다. 연금술의 시대는 길지 않은 인류사에서 1000년간 지속됐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7~1908년작 `입맞춤`.
그 옛날 금이 성스러웠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금은 소비와 과시의 징표로 쓰였다. 기원전 4600년에 제조된 가장 오래된 금제품이 불가리아에서 발견됐고, 기원전 700년 최초의 금화가 제조되기까지 했지만 오늘날의 금과 과거의 금이 갖는 의미는 다소 상이하다. 그 분기점은 언제였을까.

캉탱 메치스라는 화가가 1514년 그린 한 장의 그림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선 금을 생각하게 만든다. '환전상과 그의 아내'라고 명명된 그림은 당시 해상 무역항로 중심지였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이란 도시에 사는 한 평범한 부부를 담았다. 남편은 동전과 귀금속의 무게를 재고 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손을 바라본다. 재미있는 점은 아내의 손에 들린 두툼한 책에 아기 예수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방금까지 '영적인 독서'를 하던 여성은 물질로서의 금에 더 관심을 보인다. 저자는 쓴다. '원죄를 연상시키는 사과 한 알이 무심히 선반에서 그들을 내려다본다. 금은 당시 신앙심의 경쟁 상대였다.'

시간이 흘러 금은 예술사에서 사랑과 환희의 징표로 자주 사용됐다. 이제 안 본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입맞춤'은 성인 키만 한 상하좌우 180㎝짜리 정사각형 대작으로 몸을 구부린 남성이 도취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여성의 얼굴을 감싸는 장면을 담았다. 황금빛 배경에 황금 망토로 몸을 두른 연인은 꽃밭의 절벽에서 사랑의 정점을 확인하려 한다.

충만한 사랑의 공간(왼쪽 꽃밭)과 불안한 심연(오른쪽 낭떠러지)을 잇는 것은 다름 아닌 금박 배경이다. 부친이 금 세공사였던 클림트는 금가루와 금박을 잘 다뤘다고 저자는 전한다.

유럽에서 불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금은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오딜롱 르동이란 화가가 1907년 완성한 '부처'라는 작품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가사를 입고 수인(手印·손동작)을 한 부처 모습을 그렸다. 부처를 에워싼 광대한 별의 색채는 바로 금이다. 프랑스 화가가 남긴 동양의 종교화에서도 금은 세속과 피안의 매개로 작용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현대에 이르러 금은 부조리를 공격하는 조롱의 소재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황금으로 만든 변기를 미술관에 설치하고 실사용도 가능하도록 만든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가의 '허공으로의 도약'은 대중의 사치를 겨냥한다. 금 발굽과 금 뿔로 장식한 진짜 송아지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어 전시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황금 송아지'는 거짓 우상 숭배를 꼬집는다.

저자는 이 밖에도 10㎏이 넘는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 양피지에 금과 은으로 쓴 이슬람 경전 코란, 성모와 성자의 피에타, 17세기 엄청난 인기를 누린 바니타스 정물화의 금 동전 등을 차례대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금으로 가득한 한 권의 엘도라도 같은 책을 넘기다 보면 황금빛에 물들어 버릴 듯한 묘한 책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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