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초유의 수능정답 유예사태, 입시차질 있어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특정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는 수능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9일 지난달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수능에서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효력을 본안 소송 선고까지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92명이 해당 문항에 오류가 있다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상대로 정답 집행정지 신청을 냈는데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답 결정 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면 수험생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본안 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하면 대입 일정에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본안 소송을 같은 재판부에 배당하고 10일 오후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수능 정답 효력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이 이뤄지기는 1994학년도 수능이 시행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교육부와 평가원에 대한 실망과 답답함을 억누를 길이 없다. 교육 당국은 이번 사안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고 정교하게 대처해 입시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원의 정답 유예 결정으로 올해 수능 성적통지표를 10일부터 교부하기로 한 교육 당국은 전체 응시자 44만8천138명 중 생명과학Ⅱ 응시생 6천515명(1.5%)에게 해당 과목 성적을 공란으로 두고 성적표를 배부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된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와 이달 16일로 예정된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등 대입 일정에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수시 최저합격 기준에 수능 성적을 반영하는 대학에 응시한 수험생들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생명과학Ⅱ만 공란이면 수시 최저기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지적하며 혼란을 호소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이 벌어지게 된 데 대해 평가원의 대처가 안이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능이 실시된 직후부터 해당 문항에 대한 오류 논란이 이어져 급기야 이달 2일 소송인단이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과 이 처분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평가원은 그러나 "심의 결과 이의신청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며 "이상 없음"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교육부와 평가원이 긴급대책회의를 하는 등 법석을 떠는 모양새를 취했다. 평가원은 이미 '불수능'이라고 불린 이번 수능시험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고 첫 문·이과 통합 시험을 실시하면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조절 실패 등 총체적인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평가를 받는 터였다. 올해 수능은 국어영역에서 표준점수가 역대 두 번째로 높을 만큼 어려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수능이 작년 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원격학습 등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수험생들의 학습 결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첫 문·이과 통합 체제로 치러진 올해 수능 수학 과목에서 문과와 이과 학생 간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로 인해 자연계 수험생이 대학 수준을 높여 인문계 모집단위로 교차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의 정답 유예 결정까지 내려졌으니 수험생과 가족들이 과연 평가원과 교육 당국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당국은 이번 일로 인한 수험생과 가족들의 속상함을 헤아려 향후 입시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기민하고 철저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실추된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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