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의 티키타카(2화) [연재소설]

에린 2021. 12. 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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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안 들어가세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여자가 물었다.

“아, 네, 머, 먼저… 들어가세요.”

세라가 미적거리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사람들이 그녀를 지나쳐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세라는 문자를 간신히 찾아 읽어내려갔다. 벌어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전산오류로 합격자 발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귀하는 최종면접에서 탈락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세라는 떨리는 손으로 발신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떨려 자꾸 다른 키패드를 건드렸다. 담당자는 15층 소회의실로 와 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소회의실에는 하나같이 정장 차림을 한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초조한 마음에 두 손을 계속 비벼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르마를 단정하게 탄 남자가 서류를 옆구리에 끼고 회의장 단상 앞에 섰다. 남자는 자신을 인사부 과장이라고 소개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 면접자들에게 가번호를 부여하고 면접 후에 가번호와 실제 면접번호를 매핑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산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여섯 명의 지원자들에게 합격통보가 갔다는 것이었다. 세라는 무릎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옆에 앉은 여자가 가지런히 빗은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똥머리로 만든 다음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다. 머리에 포머드를 바르고 네이비 솔리드 재킷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장난합니까! 대기업에서 일 처리를 이딴 식으로 합니까?”

남자는 들고 있던 생수병을 바닥에 던지고 나가 버렸다. 남은 사람들도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인사부 과장은 당황한 듯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눈치를 보며 회사 로고가 박힌 증정용 우산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세라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한 손에는 증정용 우산을, 다른 손에는 우산살이 휘어진 긴 우산을 들고 있었다. 세라는 휴지통에 회사 로고가 박힌 우산을 던져 버렸다.

세라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한없이 처진 어깨로 편의점 문을 열었다. 유리문에 ‘아르바이트생 구함’이라고 써 붙인 종이를 떼어내 휴지통에 버렸다. 휴지통에서 종이를 다시 주워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발뒤꿈치가 따가웠다. 하이힐을 벗었다. 살갗이 벗겨져 진물이 나왔다.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절뚝거리며 진열대로 갔다. 슬리퍼로 갈아 신으니 살 것 같았다. 바나나맛우유를 진열대에 채워 넣을 때 강호한테 전화가 왔다. 세라는 핸드폰을 보고도 받지 않았다.

그날 이후, 세라는 줄곧 면접에서 쓴맛을 봤다. 우수한 성적과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해외연수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움츠러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족연금과 엄마가 소일거리로 번 돈으로는 생활비로 쓰기에도 쪼들렸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용돈은 한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최저시급을 받더라도 시간 활용이 가능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최선책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돼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해외연수 중인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외국 친구들과 셀럽처럼 즐기고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면 당분간 ‘언 팔’했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영어학원에 다니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했다.

세라는 한두 가닥씩 내려오는 앞머리가 거추장스러웠다. 머리카락을 모두 쓸어 넘겨 손목에 차고 있던 고무줄로 단번에 묶어 버렸다. 진열대에 빈 상품이 있는지 둘러봤다.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눈꺼풀이 아래로 꺼지면서 무릎이 꺾여 넘어질 뻔했다.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손님이 뜸하자 세라는 뾰로통한 얼굴로 계산대 밑에서 ‘챌린지 노마드’라는 책을 꺼냈다. 취업 준비생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해서 얼마 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샀다. 4년 만에 인턴에서 임원이 됐다는 표제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책 위에 초밥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세라는 얼른 책을 옆으로 밀었다. 도시락의 바코드를 찾다가 편의점에서 파는 초밥이 아니란 걸 알고 고개를 들었다.

“먹고 해.”

강호가 떡하니 앞에 서 있었다.

“근데 전화는 왜 안 받는데?”

“손님, 이리 주세요.”

세라는 음료를 들고 서 있는 다음 손님에게 손짓했다. 강호는 한숨을 내쉬며 손님에게 방해되지 않게 스낵바에 앉아 기다렸다. 계산을 마치고 세라는 초밥을 들고 강호에게 다가갔다.

“생각 없어. 너나 먹고 가.”

강호가 돌아서는 세라의 손목을 잡고 옆에 앉혔다.

“정말 생각 없다니까.”

“너, 얼굴 좀 보라고. ‘지금 나 죽어가요’라고 쓰여 있잖아.”

세라의 얼굴은 눈 밑이 움푹 들어가 한없이 내려앉았다. 다크서클은 광대뼈까지 내려와 얼굴이 더 뾰족해 보였다. 그런 자신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항의했다. 세라는 영지와 통화하다가 강호가 워크숍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호가 아직도 취직을 못 한 자신을 배려해 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것 같아 서운했다.

“내가 말 안 한 것 때문에 그래?”

강호는 말없이 워크숍에 다녀온 것이 걸렸다.

“이제 남의 속말도 다 듣니?”

세라는 비아냥거리며 말해 놓고 금세 부끄러웠다. 혹시 시기하는 건 아닌지, 그 마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입술을 다물었다. 친구들이 차례로 취직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자신한테 화가 난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구차한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꾹꾹 눌러 삼켰다. 순간, 강호가 세라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코피!”


세라가 코피를 흘리자 강호는 급하게 계산대로 가서 휴지를 가져왔다. 코피가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세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옷소매로 코피를 훔쳤다. 강호는 세라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받치고 휴지로 코를 지그시 눌렀다.

“아이씨.”

세라가 중얼거렸다.

“말하지 마. 코피 나와.”

세라는 강호를 째려보면서 목덜미를 잡은 그의 손을 치웠다. 손님이 들어와서 계산대로 돌아가 스캐너를 집어 들었다.

햇빛이 드리워진 식탁 위에는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밥이 덩그러니 있었다. 엄마가 시금치 된장국을 데워 먹으라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세라는 된장국을 냉장고에 넣고 자기가 좋아하는 참치마요 삼각김밥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세라는 면접용 정장을 꺼내 입었다. 하이힐을 신고 거울 앞에 섰다. 발뒤꿈치에 밴드를 두 개씩 붙였다. 책상 위에 있던 립글로스를 챙기고 옷매무시를 살폈다.

걸을 때마다 교복 입은 학생의 정수리가 보였다. 과일가게 아저씨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사했다. 세라는 엘라화장품의 면접 날짜가 정해진 후부터 회사의 대표 히트상품을 하나둘씩 사서 발라봤다. 사용 후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편의점에서 틈이 날 때마다 외우고 거울을 보며 기획자처럼 설명했다. 주머니에서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에 덧발랐다. 그리고 립글로스를 손에 꼭 쥐고 중얼거렸다.

“립 플럼핑 글로스는 입술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듭니다. 히알루론산 구체가 함유된 글로스 포뮬러가 수분감을 더해….”

멀리서 720번 버스가 신호대기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세라는 핸드백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에린은 누구?

본명은 조선희다. 2020년 단편소설 ‘해시태그, 스타북스’를 한국문예에 발표하였으며, 2021년 ‘바오밥 나무’를 동 문예지에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소설 아카데미와 동인회 청맥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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