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관심경제'에 포획된 삶에서 탈출하라..'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경향신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지음·김하현 옮김|필로우|352쪽|1만6000원
할 일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출근 버스를 탄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듣고 쓰면서 쉴 새 없이 두뇌를 가동한다. 직장에서도 짬짬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물을 올리거나 답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른다. 채팅창을 열고 누군가와 계속 대화를 나눈다. 휴대폰에서 잠시 눈을 돌릴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은 별로 오래 가지 못한다. 메신저가 다급한 알림음을 연속 울려댄다. X톡, X톡, 부르르, 부르르… 그때마다 몸과 의식이 자동 반응한다. 그 모든 것이 동시 다발로 이뤄진다. 귀가 후 거실이나 침실에서도, 주말에도 디지털 라이프는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문장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말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겠다. 소비자의 관심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실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 개념이 최근 빈번히 거론되는 배경은 다른 데 있다. 이른바 ‘맞춤형’ 상품이 등장하면서다. 특히 인터넷 세상에서 이 개념이 중요해졌다. 예컨대 페이스북을 열면 내가 한두 번 관심을 표했던 물건과 관련한 광고들이 주르륵 뜬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관심을 도구화해 이윤을 취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우리의 1분 1초는 기술에 포획돼 경제 자원으로 활용된다”고 말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관심과 욕구를 활용하는 댐과 같아서, 우리의 욕망을 장악하거나 방해하면서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각종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해 도무지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는 얘기다. 가장 섬뜩한 것은 “관심의 빗장 공동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다.
저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것들이 휴대폰 밖에 있다”면서 관심경제에 포획된 삶에서 탈출하길 권유한다. 얼핏 들으면 “관심경제에서 그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는 페이스북을 당장 탈퇴하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뜻은 아니다. 저자는 “나는 기술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고결한 척하는 인터넷 금욕주의”와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그는 이 지점에서 허먼 멜빌의 소설에 등장하는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린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에 따르면,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바틀비의 반복적 답변은 ‘질문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바로 그것이 저자의 해법이다. 그는 “우리의 진정한 거부는 바틀비의 대답”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탈퇴하는 것보다 ‘관심 자체를 이동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 관심의 통제권을 되찾는 것, 모두 함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관심 주권의 회복”이라 부른다.
그러면 어디로 관심을 이동할 것인가. 책의 후반부는 이 지점을 서술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저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아주 천천히, 질감을 느끼며 세상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점을 거론하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존 케이지의 전위음악 ‘송 북스’(Song Books)를 연주하다가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스무디를 만들어 그것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시는 장면을 떠올린다. 물론 이 또한 음악의 일부다. 정장 차림으로 경직돼 있던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왁자하니 폭소를 터뜨린다. 틀에 박힌 관념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털어놓으며 “습관적 의식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한다.
휴대폰과 SNS를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그는 집 주변의 공원(저자의 동네에는 ‘장미정원’이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있다), 베란다를 방문하는 새, 근처를 흐르는 강, 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 동네 도서관 등을 거론한다. “가까이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듯 “장소를 인식”하고, “마음을 챙기”는 일에는 굳은 의지와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저자의 말은 이렇다. “자연과 문화는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처럼 착취에 저항한다. 소살강을 따라 새로 심은 오리나무는 지금도 계속 자란다. (인디언) 오론 부족의 마캄함은 올해 정식으로 카페를 열었고 오픈 첫날 긴 줄이 늘어섰다. 지금도 철새가 매해 돌아오고 나는 아직 알고리즘으로 축소되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의 메시지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관심을 이동해 “기술결정주의의 탄압”에 맞서자는 제안이다.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듯 저자는 기술 반대론자가 아니다. 심지어 그는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다. 하지만 동시에 “새를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새 관찰자”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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