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無로 만든 신비주의자, 시몬 베유의 책 3권

백승찬 기자 2021. 12.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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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지음·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59쪽 | 1만4000원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시몬 베유 지음·이종영 옮김 | 새물결 | 190쪽 | 1만9500원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시몬 베유 지음·이종영 옮김 | 리시올 | 124쪽 | 1만2000원


시몬 베유(1909~1943)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선 그의 삶도 살펴야 한다. 사상가들은 종종 그들 삶의 조건과 무관한 사유를 풀어놓지만, 베유의 생각은 삶에서 나왔고 삶은 생각에 의해 추동됐다.

베유는 프랑스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베유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강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참호의 병사들에게 설탕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섯 살의 베유는 자기 몫의 설탕을 군인에게 보내길 원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중국에 대기근이 났다는 소식에 오열한 적도 있다. 베유는 늘 수도사를 연상케 하는 검소한 복장을 입었다. 1928년 프랑스 최상위 교육기관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고 교수자격 시험에도 합격했다. 졸업 후에는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근무했다. 당시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눈을 뜬 베유는 여러 노동자 파업을 지원했다. 월급의 절반을 파업 광부에게 기부하고, 식사도 노동자들과 똑같이 적게 먹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했으나 현실의 소련 체제에는 실망했다. 스탈린에게 추방된 트로츠키를 1933년 파리에서 만나 토론했다. 이듬해에는 아예 학교를 떠나 각종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자의 삶을 경험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기자 신분으로 바르셀로나로 향해 무정부주의자 부대에 합류했다. 한 달 반 만에 큰 부상을 입고 귀국한 베유는 훗날 자신이 속했던 부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38년 이탈리아의 아시시 성당 등을 여행했고 이후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낀 신비 체험을 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베유와 가족은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낮에는 농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비시 정권에 맞서는 글을 썼다. 1942년 미국 뉴욕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전쟁과 무관한 안락한 도시에 머무는 것에 불편을 느껴 곧바로 영국 런던으로 가서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다. 프랑스에 낙하산으로 잠입해 직접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려 했지만 상부로부터 제지당했다. 전후 프랑스 재건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1943년 4월 폐결핵 진단을 받았고 8월24일 34세에 사망했다. 베유는 사망 당시 음식을 거의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를 자살로 봐야 할지 논란이 있었다.

베유는 많은 글을 썼다. 생전 발표된 글도 있고 사후 출간된 유고도 있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중력과 은총>은 베유가 남긴 10여권의 공책 중 몇 단장들을 골라 제목을 붙인 책이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 T S 엘리엇 등의 격찬을 받아 베유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단상들을 묶은 책이니만큼 일관된 체계는 없다. 신학적 단상들이 ‘자아’ ‘필연과 복종’ ‘악’ ‘우주의 의미’ 등의 제목 아래 엮였다. 제목의 ‘중력’은 인간을 구속하는 필연, ‘은총’은 이를 거슬러 상승하는 구원으로서의 영성을 의미한다.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직시하면서 섣부른 위안을 거부한다. ‘고통’을 “신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우월성”이라고 말하고, “선(善)은 침범되지 않는다. 우리가 침범할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선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강렬하지만 알듯말듯한 아포리즘이 이어진다. 이 책을 번역한 윤진은 “사막에서 외치는 선지자를 떠올리게 하는 베유의 목소리”를 이 책의 매력으로 꼽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는 노동, 종교, 정치적 주제를 복합적으로 사유했다. 그가 생전 남긴 10여권의 공책은 사후 책으로 출간됐는데, 그중 <중력과 은총>이 가장 잘 알려져있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와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은 초역이다. <일리아스>에 대한 독특한 해설서로 볼 수 있는 전자가 이번에 나온 3권의 책 중 가장 읽기 편하다. 베유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 헥토르 같은 영웅이 아닌 ‘힘’의 작용에 집중한다. “힘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을 사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쟁의 암운이 유럽 대륙을 감쌌던 1938~1939년쯤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리아스>를 통해 힘이 사람의 영혼을 종속시키는 전쟁터를 묘사하는 동시에 전쟁의 잔혹성 속에 숨겨진 은총의 순간을 읽어낸다.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에는 베유가 신비 체험 이후 쓴 글 중 옮긴이가 중요하다고 여긴 글들이 묶였다. “신을 믿는 건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가짜 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첫 문장부터 베유의 근본적인 신학관이 묻어난다. 그의 단호한 생각들은 현실 제도에 대한 견해로까지 이어진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정당의 폐기에 대한 노트’에서 베유는 정당을 “당원들의 생각에 집합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본다. 아울러 정당의 첫째 목적이자 궁극의 목적은 “무한한 자기확장”이라고 간파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당이라는 제도는 ‘전체주의적’이라고 못 박는다. 정당은 자신의 존재 이유인 공공선에 봉사하기 위해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져도 만족하지 않는다. 나라를 완전히 장악했어도 국제관계의 제약을 받는다. 베유는 정당은 “파문의 위협으로 무장한 세속적 교회”이며, 당원들에게 “생각하지 않기의 편안함”을 퍼트린다고 봤다.

이 두 권을 번역한 이종영은 통화에서 “베유는 인격적인 신, 권력 가진 신을 거부하고 이 세계 바깥에서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존재로서의 신을 설정했다”며 “베유는 자신을 무(無)로 만들어야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봤기에 세상 속 여러 가지 운동에 완전히 헌신한 보기 드문 신비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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