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인들도 마스크를 썼을까? 약 광고로 보는 근대인의 몸 '이 약 한번 잡숴 봐!'

이혜인 기자 2021. 12.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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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 약 한번 잡숴 봐!

최규진 지음 | 서해문집 | 512쪽 | 3만3000원

1919년 <매일신보> 12월26일자에 실린 삽화. ‘선물을 사서 가기에도 바쁜데 악성감기 예방용 마스크 때문에 숨이 더 헐떡헐떡한다’고 적혀 있다. 마스크를 ‘입 코 덮개’라고 병기했다. 서해문집 제공.


100년 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도 감염병 위기에 처했을 때 마스크를 썼을까. 1918~1920년에는 지금의 코로나19와 유사한 전 세계적인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독감 보도가 많았다는 이유로 일명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약 광고를 보면 당시 조선에서도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19년 경성일보의 광고에는 “악성 감기가 전도에 만연하다. 반드시 주의”하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유행은 1918년 시작됐지만, 조선 사람들은 뒤늦게 마스크의 효능을 알고 착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후반이 돼서야 신문 광고에 마스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 중 매일신보가 처음으로 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해 양치질과 마스크 착용을 권한다. 그해 12월26일자 신문 삽화에는 마스크를 쓴 남성이 등장한다. “선물을 사서 가기에도 바쁜데 ‘악감(악성감기)’ 예방용 ‘입 코 덮개’ 때문에 숨이 더 헐떡헐떡한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최규진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교수는 “약 광고에 마스크가 등장하는 것은 (유행 시작) 한참 뒤의 일”이라고 전한다. “일본에서는 일반에게 싼값으로 마스크를 제공하려고 힘을 기울였지만, 식민지 조선의 총독부와 경무 총감부에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광고를 통해 한 사회에 새로운 개념이 퍼지고, 그 개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최 교수는 10년 넘게 광고와 같은 근대 시각 자료를 들여다보며, 근대 이데올로기의 작동 과정을 고찰했다. <이 약 한번 잡숴 봐!>는 최 교수가 1910~1940년대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약 광고 중에서도 신문 광고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경성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그 시기 신문 사료가 분석 대상이다. 그간 자료 접근이 어려워 광고사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경성일보 광고가 다량 실렸다. 1900년대 초반은 일본을 통해 과학기술과 신약이 조선에 대량으로 전파된 시기다. 약 광고를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이 신체를 어떻게 규율하는지, ‘몸 문화’를 생성시키는 여러 장치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알 수 있다.

1911년 8월2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위장약 광고와 1919년 2월13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약 광고. 내장기관과 뇌의 구조를 알려주는 해부학적 지식이 담겨있다. 서해문집 제공.


16~17세기 유럽에서는 인간의 몸을 해부학 지식에 기초해 바라보기 시작했으나, 19세기까지도 동양에서는 몸을 우주의 오행과 상응하는 오장육부로 파악하는 시각이 더 일반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도 해부학적 지식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의약품 광고는 주요 전파 수단이었다. 1911년 8월29일자 매일신보에는 경술국치일을 축하하는 소화제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는 인체해부도가 전면에 등장한다. 콧수염이 있는 남자의 식도를 따라 약이 들어가자 위에 사는 세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망가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전면광고는 해부학과 세균 그리고 위생이라는 근대의학 지식체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해부학적 지식과 함께 인간의 몸을 기계에 비유하는 서구의 기계론적 신체관도 퍼진다. 1935년 7월21일자 경성일보에 실린 동맥경화와 뇌일혈 예방약 광고는 혈관을 기계의 작동을 위한 액체의 도관처럼 비유했다. 세균과 위생에 대한 개념도 이때 대중에게 보급된다. 세균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약 광고에서 세균을 도깨비, 독사, 쥐 같은 혐오동물이나 거미줄에 비유했다.

콧병을 내버려두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코를 뚫은 열대지방의 원주민을 모델로 한 1941년 2월27일자 <매일신보> 약 광고. 서해문집 제공.


약 광고에는 그 시기 인종, 젠더와 관련된 차별적 시각이 담겨 있다. 축농증과 같은 콧병을 내버려두면 뇌가 나빠진다는 내용을 담은 1941년 2월27일자 매일신보는 코를 뚫은 열대지방의 원주민을 모델로 삼았다. 성병 광고에서는 잠재적 보균자로 여성이 주로 등장했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에서 성병의 비극은 남성이 가정으로 병독을 옮겨 유전 등으로 영구화한 비극”이었으나 정작 “성병약 광고에서 여성은 희생자이기보다 유혹자의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경성일보 1934년 7월19일자에 실린 광고에서는 무덤덤한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모습이 술 그림과 함께 들어 있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정신질환을 설명할 때도 여전하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정신적 질병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신경쇠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히스테리’라는 용어는 신경쇠약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으며, 감상적 기분에 좌우된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광고 속에서 남성은 신경쇠약을, 여성은 히스테리를 겪는 주체로 그려진다.

1934년 7월19일자에 실린 임질 약 광고. 당시 성병 약 광고는 여성에 대해서 남성을 유혹하는 성병 매개체로서 에로틱한 시선을 담아서 만들곤 했다.
광고 속에서 신경질환은 남성의 질환(오른쪽 사진)으로, 좀 더 부정적 의미인 히스테리는 여성의 질환(왼쪽 사진)으로 묘사되곤 했다. 1933년 10월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신경병 광고(오른쪽)와 1939년 5월2일자 <경성일보>에 실린 약 광고(왼쪽). 서해문집 제공.


몸을 자신과 분리해 객체화하고 관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근대의 특징이다. 저자는 “시각 중심 사회에서 신체는 매우 중요한 자본이자 사유재산이 되었다. 시각 중심 사회에서는 보기와 보여주기가 중요했다. 거울에 비친 내 신체는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신문과 같은 매체는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시대에 맞는 미의 기준’을 전파한다. 1922년 1월27일자 동아일보 광고를 보면 “문명이 발달한 서구는 백색 인종이다. 우리 유색 인종이라도 문화가 발달한다면 백색으로 될 것이다. 이 약을 바르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고 적혀 있다. 여드름약을 비롯한 각종 피부약이 나오면서 매끈하지 않은 피부는 불결과 허약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성형수술 광고도 등장한다. 1923년 7월15일자 동아일보에는 코를 오똑하게 만들어준다는 ‘융비기’ 광고가 실린다. 광고 문구는 이렇다. “코는 인생의 꽃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행복과 불행이 나뉘는 지점은 실로 코의 모양 여하에 있다.”

1938년 10월1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위장약 광고. 집단체조를 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마치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독일 병정을 떠올리게 한다. 서해문집 제공.
1932년 2월10일자 <경성일보>에 실린 어린이 약 광고.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입은 아이가 병정놀이를 하고 있다. 서해문집 제공.


책을 읽다보면 지금 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시각이 100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건강은 시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의미한다기보다, 시민들이 사회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묘사된다. 야근과 숙취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간장약을 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는 간장약 광고가 익숙하지 않은가. 저자는 “약 광고는 근대적 건강 담론의 유통에 개입했다. 의약품 광고를 통한 시각적 경험은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자본의 관리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노약자와 빈자는 약 광고에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우리네와 똑같이 생로병사의 고뇌에 시달렸던 사람들, 그리고 ‘약의 잔치’에 제대로 초대받지 못했던 가난한 이들의 삶을 되새기며 인문학적 사유의 한 가닥을 가다듬어 보기를 권유한다”고 말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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