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정원 채울 생각 말고 철저히 학생·기업 친화시스템으로 변해야"

박정경 기자 2021. 12. 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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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이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서울캠퍼스 국제관 108라운지에서 “대학은 혁신을 통해서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며 세계 주요 대학들이 진행하고 있는 혁신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 현안 인터뷰 -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

작년 4년제 미충원 6만5000명

재정적자에 직면한 대학 80개

전세계대학도 학생數 부족 고민

韓대학 수도권-비수도권 불균형

지나친 규제로 자율 역량 약화

획일화된 평가·시스템 고쳐야

韓대학, 4·5차 산업혁명에 맞는

학습·인재 플랫폼 역할 중요

혁신으로 창의성 인재 육성해야

대학의 미래가 어둡다. 지난해 4년제 대학의 미충원 인원은 6만5000명, 재정적자에 직면한 대학은 80여 개였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인구변동과 미래 전망:지방대학 분야’ 보고서를 보면 2042∼2046년 국내 대학은 190개로 예상된다. 올해 기준 국내 대학이 총 385곳인데 25년 뒤에는 이 중 절반 이상 소멸한다는 비관적 예측이다. 이미 20년 전부터 ‘대학 정원 미달’ 사태를 경고했던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대학 총장들은 정원을 채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조차 코로나19 여파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해 90년 만에 적자를 냈다. 학생 수 부족 문제는 유수의 대학도 겪고 있는 전 세계 대학들이 직면한 문제다.

이 소장은 되레 학령인구 감소보다도 더 큰 문제는 지금의 대학 교육 방식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현 대학 교육은 4·5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인재를 기르는 데 적합하지 않다”며 “단순한 구조조정 수준이 아닌 총체적인 혁신이 시급하다”고 일갈했다.

최근 김종량 한양학원 이사장과 총 23개 국가 대학들이 4·5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어떤 혁신을 하고 있는지를 다룬 ‘대학 살아남기’를 펴낸 이 소장을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서울캠퍼스 국제관 108라운지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원 채울 생각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무슨 뜻인가.

“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미래 예측을 해봤더니, 2000년을 변곡점으로 학생 수가 부족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정원 부족 사태가 멀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대학들이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달라졌고, 이제 와서 해법을 찾고 있다.

미국 역시 학생 수가 부족해 매년 250개에서 280개의 대학이 시장에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학생 수가 여유로운 나라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선진국들도 유학생 유치가 어렵게 됐고, 전반적인 추세를 보면 전 세계 대학이 위기 상황이다.”

―‘학생 감소’ 외 대학위기 원인은.

“가장 큰 이유로 현 대학 교육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형 기업 인재를 기르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첨단 기술 같은 건 1∼2주를 다툰다. 그런데 대학 교육은 수년 전에 설계된 커리큘럼을 학생들에게 4∼5년 동안 배우게 한다. 변화된 환경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적시성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장과 대학의 간극이 좁아진 형태가 돼야 하는데 그런 교육이 보편화 되지는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한 사람이 적어도 20개에서 100개 정도 직업을 거쳐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직업 생태계가 변하기 때문에 대학 교육도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4차 산업 인재는 종래의 인재와 다르다. 가장 큰 인재상이라고 하면 ‘창의성’인데, 하루 이틀에 길러지지 않는다. 통합적 문제 해결능력이 있어야 하고, 모험심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과연 현 대학 교육이 이런 인재를 기를 만한 커리큘럼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을까.”

―특히 한국 대학의 문제점은.

“세계적인 것과 한국 대학만의 고유한 위기 요인이 있다. 재정적 위기는 비슷하다. 영국과 호주 대학들의 수입 감소율은 각각 14, 21%에 달한다. 일본도 638개 대학 법인 중에서 18% 정도인 125개 대학이 파산상황에 처했다. 우리도 118개 사립대학 중 74%에 해당하는 85개 대학이 적자다.

우리 대학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현상이 두드러지게 심하다. 대학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다는 문제가 있다. 일본의 경우 대학 규제를 혁명적으로 풀었다. 규제는 대학의 자율역량이 약화 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좀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한데, 대학이 정부에 길들여져 왔다는 말이다. 길들여져 온 대학은 혁신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세계 경쟁력에서 앞서갈 수 없다. 대학에 대한 획일화된 평가와 시스템은 우리 대학이 갖고 있는 큰 문제점이다.”

―세계 대학들은 무얼 하고 있나.

“총체적 혁신, 다시 말해 신대학 패러다임을 설정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먼저 공유형 혁신을 하는 곳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가 있다. 주에 산재돼 있는 대학 간에 기자재, 인력, 연구영역을 공유한다. 매력적인 지방대학의 성공사례로는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공업대학’을 참조하면 된다. 여기는 기업하고 직무협동교수방법을 도입했는데, 산학협동을 넘어선 교육협동, 학습 협동이다. 2019년 기준 취업률 99.8%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영국의 ‘워릭대학’은 재정의 67%가 수익사업에 의한 대학이다. 정부 지원은 21% 정도밖에 안 된다. 학생들이 워릭 주식회사라고 부를 정도로 기숙사 건물은 방학이면 방문객에게 개방하고, 방학 내내 각종 학회를 유치하고 사용료를 받는다. 다른 대학과 달리 선별적으로 학과를 신설하고, 투자에 비해 성과가 괜찮을 것인지를 우선 따진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의학, 치의학, 수의학 대신 경영학, 과학 엔지니어링에 투자한 것도 특징이다. 핀란드의 ‘팀아카데미’는 학생, 교수, 강의실, 수업이 없는 대신 학습자, 팀코치, 팀학습, 기업과 고객으로 구성해 팀 중심으로 운영한다. 실제 기업 운영방식으로 창업교육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괌 대학’은 특화 대학이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섬 생존에 관한 연구, 해양생태계 관한 연구, 지질 연구 등에 특화된 연구 기관이다. 남이 하지 않는 걸 연구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다.”

―우리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은 철저히 고객 친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고객이 누구인가. 학생하고 기업체다. 4·5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역할은 ‘플랫폼’이다. 집체 교육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학습 플랫폼으로서, 인재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평생 교육’을 고급화하는 것은 학습 플랫폼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재정확보에 나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단, 재정지원 방법을 바꿔야 한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경상비 보조를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사립대학 적립금이 많다고 지적하는데, 적립금은 적립금이다. 적립금의 목적은 따로 있고, 몇 개 대학에 편중돼 있는 문제다. 정부가 지원하되 평가방법을 다양화하고, 각종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주로 ‘선지원 후평가’ 시스템을 적용한다.

과감히 공유 대학 체제로 가야 한다. 우리 대학은 벽이 너무 많다. 일본에선 대학과 대학 간 교환이 잘 돼 있고, 자원도 공동으로 쓰게 한다. 국립대학이 두 개 법인을 경영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과감히 학교 간 병합도 시도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해주고,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구성원들의 풍토도 바꿔야 한다. 융합의 시대다. 수학과와 문화예술 쪽을 접목하기도 하고, 의학과와 경영학을 접목하기도 한다. ‘내 과’ ‘내 학생’에 집착하지 말고 융합해야 한다.”

―대학 혁신 과정에서 인문사회대 등 취업률이 저조한 과는 위기라고 볼 수 있나.

“반드시 그렇진 않다. 인문사회대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4·5차 산업 사회에서는 인문사회 없이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있어도 쓸모없는 영역이 될 수가 있다. 인문사회계통이 콘텐츠를 담아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단 조금은 변할 필요도 있다. 콘텐츠화하는 작업을 과감히 해야 한다.”

―지방대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지역 사회 상생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처럼, 더불어서 인접해 있는 대학들과의 공유 대학 형태로 생존해야 한다. 우리 대학도 모든 학문 분야를 예전처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연계를 시도하고, 수도권으로 이탈을 방지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또 하나는 사회적으로 수요가 있거나 첨단 분야는 과감히 지방대학에 할당제를 시행할 필요도 있다.”

―인재 선발 방식은.

“5차 산업 사회가 되면 ‘양 뇌 사회’가 된다고 한다. 본인 뇌에 AI 두뇌를 더하는 거다. 현 인간 능력의 수천 배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입시 교육은 주로 암기 능력이 탁월하거나 반복 학습에 훈련된 사람을 선발한다. 한데 미래 사회에 요구되는 인재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에는 기계와 협업해야 해 협동심이 중요하고, 통합적 문제 해결력과 도덕성이 필요하다. 입시 선발 전형요소들을 바꿔야 한다. 지금 현재 교과서 중심, 입시 수능 중심 이런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따른 새로운 인재상으로 이걸 측정해 낼 수 있는 전형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창의력 개발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창의력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부모들은 명심했으면 좋겠다. 호기심, 끊임없는 도전, 긍정적 사고 이 세 가지가 조합됐을 때 창의성이 나온다는 점을 기억하고 자녀를 지켜봐 주길 바란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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