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해준 사례비 대신 '이야기'를 준비하세요

나윤석 기자 2021. 12. 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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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이름처럼 중고책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여느 책방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헌책방엔 '절판된 책'을 구해달라는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데, 이 책방 주인은 몇 달을 수소문해 어렵게 책을 구해줘도 책값만 챙기고 사례비(수수료)는 받지 않습니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프시케의숲)는 이 책방지기가 10여 년 동안 만난 사람과 책에 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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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석 기자의 북레터

서울 은평구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이름처럼 중고책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여느 책방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헌책방엔 ‘절판된 책’을 구해달라는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데, 이 책방 주인은 몇 달을 수소문해 어렵게 책을 구해줘도 책값만 챙기고 사례비(수수료)는 받지 않습니다. 대신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그 책에 얽힌 손님의 사연 말입니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프시케의숲)는 이 책방지기가 10여 년 동안 만난 사람과 책에 관한 기록입니다. 손님이 찾는 책 종류만큼 다양한 사연이 펼쳐집니다. 수십 년 전 첫사랑에게 선물한 책과 같은 판본을 찾아달라는 이도 있고,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 소식이 끊겨버린 후배와의 추억을 털어놓는 이도 있습니다. 의뢰인이 책 제목이나 저자 같은 ‘핵심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면 주인은 작은 단서에 의존해 범인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기억의 조각을 모아 책의 ‘윤곽’을 그려나갑니다. 때로는 애틋한 러브스토리 같고, 때로는 쫄깃한 추리극 같은 사연들 위로 앙드레 지드의 ‘미완의 고백’, 박완서의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헤르만 헤세의 ‘방랑’ 등 여러 책 이야기가 얹어집니다.

책에 실린 29편의 ‘기담’ 속에서 의뢰인은 모두 원하던 책을 손에 넣습니다. 대부분은 주인이 수고롭게 발품을 판 덕분이지만, 주인도 찾기를 포기하고 잊고 있던 책이 어느 날 트럭에 실려 들어 온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장서가가 책방에 통째로 넘긴 서재에 손님이 찾던 책이 숨어 있는 기막힌 우연도 있었고요. 이런 신기한 경험을 통해 주인은 깨닫습니다. 책과 사람 사이엔 운명이라고 할 만한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 같다고. 사람 간의 인연처럼 이리저리 엉킨 끈은 빙빙 돌고 돌아 어느새 가야 할 자리에 가닿는다고.

북팀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매주 회사에 도착하는 책은 100권을 훌쩍 넘습니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읽고 기사를 쓰는데, 이를 어찌 ‘인연’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신없이 달려왔더니 벌써 한 해의 끝이 보이네요. 여러분은 올해 어떤 책과 인연을 맺으셨나요. 새해 결심이 무색하게 제대로 읽은 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요. 그래도 지레 실망하거나 자책하지는 마세요. 2021년은 아직 3주나 남았고, 신간은 오늘도 수십 권씩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주 북팀이 정성스레 준비한 책 중에서 ‘올해의 인연’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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