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묻고 답하다, 1990년대 생 작가들의 Q&A

서울문화사 2021. 1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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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서로 다른 물성으로 작업을 하는 네 명의 1990년대 생 작가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인터뷰했다.



From 김하늘 - To 강영민

하늘 어쩌다 폐플라스틱으로 작업을 하게 됐어요?

영민 공장 견학을 갔다가 쓰레기 포대에서 발견하곤 “예쁘다”라고 했더니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이걸론 아무것도 못해. 십수 년을 봐도 쓸모가 없는 건데!” 하시더라고요. 제 눈에는 가치 있어 보이는데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규정하니까, 내가 새롭게 보여주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늘 사회적 정의나 규범으로부터 탈선하겠다는 의미였나요?

영민 저는 탈선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봐요(웃음).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거나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더더욱. 지금보다 더 어리고, 아무런 영향도 발휘할 수 없던 시절의 저는 사회적 규칙을 많이 강요받았어요. 조언에 압도되면서도 의구심을 품었고요. 제가 폐플라스틱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건 내가 자라온 사회에 대한 반발이자 어른이 된 강영민이 사회에 전하는 목소리예요.

하늘 또래 작가와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찾은 적이 있나요?

영민 이건 회사를 다니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서도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인데요. 저는 어느 기업의 타이틀이나 직함을 원하는 친구를 한 명도 못 봤어요. 진급하려는 욕심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점점 많아져요. ‘어떤 갤러리에서 전시를 해야지, 누구와 협업을 해야지’ 보다는 오늘의 즐거움에 우선순위를 둬요.

하늘 다양한 셀러브리티,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소식이 자주 들려요. 어떤 방법으로 어필하는지 궁금합니다.

영민 전시를 할 때나 평소 작업 모습을 SNS에 찍어 올릴 때 떠오르는 모티프를 해시태그로 해둡니다. 최대한 많은 방법으로 작업을 노출하고, 제 생각을 보여주는 게 협업으로 이어질 때가 많더군요.

하늘 요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작가나 디자이너가 있나요?

영민 살레헤 벰버리, 다니엘 아샴, 칸예 웨스트, 버질 아블로.

하늘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있나요?

영민 가끔 서로의 아이디어에 대해 비평을 하거나 의견을 공유하다 언성이 높아지곤 하잖아요. 서로 인정하고 응원해줘야 국내 예술업계의 미래가 밝지 않을까요? 연대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늘 2022년엔 뭘 하고 싶어요?

영민 개인적으론 더 역동적인 취미를 갖고 나를 확장시키고 싶어요. 작업 면에서는 제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한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작품의 형태만으로 여러 사람에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하늘 요즘 고민하고 있는 건 뭔가요?

영민 틱톡 같은 숏폼이나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요. 몇 시간 동안 의자를 만드는 걸 보여줄 수도 없고...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From 강영민 - To 스튜디오 차차

영민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차차 “누구에게나 ~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요. 누구나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는 걸 전제하는 말이죠. 이걸 마음에 담고 있으면 우리는 사물, 사건,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예단하거나 하나의 컬러로 규정하지 않고요.

영민 동시대 또래 국내 작가들의 작업을 자주 보는 편인가요?

차차 자주 봐요. 점점 더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선배들을 보면, 예전엔 작가가 되는 정도가 있었어요. 대학원을 마치고 개인전을 하는 식으로 ‘데뷔’를 했거든요. 요즘은 다들 SNS에 먼저 올려요. 작가라고 불리는 문턱이 많이 낮아진 거죠.

영민 긍정적인 변화일까요?

차차 정도를 걸으면서 공예적 수고로움까지 더해진 것만 작품이라 여겼다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굉장히 부담스럽겠죠. ‘이것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아?’ 하는 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고 즉각적 반응도 얻을 수 있게 된 건 긍정적인 면이라고 봐요.

영민 요즘의 고민은 뭔가요?

차차 새로운 문물에 빨리 적응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틱톡’ 같은 것에도 적응을 해야 하는데, 저는 도저히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영민 그러니까, ‘지금’에 발맞춰가려는 게 큰 이슈네요.

차차 맞아요. 2022년에 가장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도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디지털 파일과 구매자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예술 작품을 디지털화한 파일을 원본으로 만드는 암호화 기술)예요.

영민 유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이 가능한 물성인데요. 왜 가구를 만들기로 했나요?

차차 저는 가구에만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접근 가능한 예술을 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던 거예요. 그 시작이 가구였던 거죠. 새로운 걸 만드는 것에 여전히 관심이 많아요.

영민 영감을 받은 인물이나 콘텐츠가 있나요?

차차 저는 최근에〈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스우파)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어요. 주목받는 분야가 아님에도 자기 자리를 꿋꿋이, 오래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을 보니까 용기가 생겨요.

영민 어떤 용기요?

차차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도 여전히 주류는 아닌 것이 속상할 때가 있어요. 근데 스우파에 나온 이들을 보니 그저 내가 이 자리에서 열심히 내 것을 하고 있으면 되는 거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되게 멋진 일이잖아요.


From 스튜디오 차차 - To 이채영

차차 더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 수도 있지 않나요?

채영 아트 퍼니처는 기능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황을 구축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래서 저의 이야기를 투영할 수도 있고, 타인이 사용했을 때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른 존재로 분류될 수도 있죠. 기능적으로 쓰이건, 심리적 안정감을 주건. 저는 제가 디자인적 운동을 야기할 수도 있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아트 퍼니처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차차 대중에게 보여주기 쉬워진 만큼 더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잖아요. 불안하진 않아요?

채영 불안하지 않아요. 제가 만든 가구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예요. 나는 나 하나뿐이니 그것만으로도 유일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차 현재의 작업 방식을 지속할 예정인가요?

채영 과정, 환경, 기법은 계속 변할 것 같아요. 이제 시작했으니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겠죠. 최대한 많은 협업에 도전하려는 이유는 계속 실험해보고 싶어서예요.

차차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채영 너무 많아요. 동시대 작가로는 호세 다빌라, 최병훈 교수님, 서정화 교수님을 좋아해요. 호세 다빌라의 조형감, 최병훈 교수님의 히스토리, 서정화 교수님이 가르쳐준 ‘작업을 끌고 나가는 방법’….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트 퍼니처 분야를 확립한 앞 세대 디자이너들이 쌓은 반석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차차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는?

채영 시간을 쌓는 행위들. 제가 택한 에보나이징과 카빙은 칠 위에 색을 덧칠하고 깎아낸 것을 또 깎아내는 지난한 과정을 수반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만큼 힘도 들지만 제가 들인 정성만큼 특별한 텍스처가 나온다는 걸 알죠. ‘여기, 지금’에 오롯이 충실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해요.

차차 일상에 영감을 주는 것?

채영 배우 신세경의 브이로그요. 다 챙겨 봐요. 작가는 결국 내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 그를 분명히 말하기 위해선 일상을 튼튼하게 다져서 나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배우 신세경 씨는 일하는 시간 외에도 항상 건강하게 시간을 쓰더라고요. 그런 삶의 태도가 보기 좋아요.

차차 2022년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채영 개인적으로는 시르사아사나(요가 동작 중 머리를 바닥에 댄 채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 자세)를 완성하는 거요. 그리고 더 많은 브랜드, 작가랑 협업하고 싶어요. 올해 루이까또즈, 사진작가 류지훈과 협업을 해봤는데요. 확실히 혼자 작업할 때와 외부에서 자극을 받으며 일할 때의 느낌이 달랐어요. 재미있었죠.

From 이채영 - To 김하늘

채영 한국에서 1990년대 생 작가로 사는 건 어때요?

하늘 90년대 생은 스스로 새로운 소재나 시스템을 찾아야만 하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이 분야의 선배들과 형, 누나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이미 다 해버린 것 같거든요(웃음).

채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하늘 지속 가능성. 디자인은 소재나 기법보다 스토리텔링과 지속 가능성으로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대중에게 울림을 줄 거고,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채영 폐마스크로 새로운 물성을 만들어내기까지 시행착오와 좌절이 많았을 텐데요. 힘든 시기를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뭐였어요?

하늘 나 자신에 대한 확신. 얕은 가능성이 보였어요. 저는 무엇이건 간에 작은 틈만 보여도 해낼 자신이 있어요.

채영 폐마스크를 녹이는 과정에서 600℃의 열을 가한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발생하진 않나요?

하늘 첫 작업에서는 폐마스크를 전부 녹였는데요. 작업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위생이나 감염에 대한 우려를 피드백 받고 이제는 마스크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로 가구를 만들어요. 이 천은 기본적으로는 플라스틱이긴 하지만, 유아용 젖병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이라는 소재라 열가공 과정에서 환경호르몬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환경엔 무해해요.

채영 환경 외에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

하늘 팬데믹, 인권, 차별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지내요. 이 3가지 키워드에 대해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디자인도 내보이고자 구상 중입니다.

채영 SNS를 통해 작품을 선보인 것이 회자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경험이 있잖아요. 전시와 SNS를 통한 자기 피력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하늘 저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즐기는 것, 그다음으론 전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SNS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전시가 더 하고 싶어요. 타이틀이 주는 힘이 있으니까.

채영 김하늘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늘 나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자극이 가장 커요. 지금으로선 동료애와 선망에서 오는 자극이 저를 움직이는 힘이에요. 대표적으로는 문승지 작가요. 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의지하는 형이거든요.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의 작업에서 영감도 많이 얻어요.

채영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것을 알려주세요.

하늘 가구가 놓이는 공간 전체를 기획하기, 제품으로서 대량 양산해보기. 개인적으로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습니다.


90년대 생 작가들은 그들을 주목하는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중이다.
생각을 열어주는 가구, 새 방향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로.

에디터 : 박민정  |   포토그래퍼 : 전세훈(슈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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