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와 돌덩어리도 느끼고 소통하는 우주

최원형 2021. 12. 10.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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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 흔든 새 철학 사조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해설
화이트헤드 철학으로 톺아보기
"존재는 다른 존재 안에 존재한다"

사물들의 우주
사변적 실재론과 화이트헤드
스티븐 샤비로 지음, 안호성 옮김 l 갈무리 l 1만7000원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서구 전통의 인간중심주의를 공격하고 해체하는 철학적 조류,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은 ‘인류세’에 대한 반성적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변적 존재론은 인간 정신이 관계하고 이해하는 방식과는 무관하게 실재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아니며 모든 존재는 동일한 한 평면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새기게 만들었다. 인간중심주의에 난 균열은, 인간 주체가 중심에 있는 세계가 아닌 “객체들의 민주주의”로 이뤄진 세계를 바로 보게 만든다. 다만 여기에는 어쩐지 가없는 허무주의를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우리의 현존에 무심한”(캉탱 메야수) 자연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가치와 의미도 말할 수 없는 것인가?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스티븐 샤비로(67)가 2014년에 내놓은 <사물들의 우주>는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해설서다. 영국 출신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를 연구한 지은이는 “사변적 실재론 또는 신유물론이라 분류할 수 있는 철학적 조류를 통해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고 밝힌다. “존재의 상태보다는 존재하게 되는 방식을, 사고의 어떤 전제된 본질보다는 사고의 양태를, 그리고 불변하는 실체보다는 우연적인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인간중심주의에 의문을 던지며 질 들뢰즈의 그것과 함께 사변적 실재론 등 새로운 철학 조류에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인간이 창조의 정점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무엇이 일어날까?” 기본적으로 사변적 실재론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드러낸다. “세계는 그것을 형성하고 처리하는 우리의 방식(인식)에 의존한다”는 상관주의는 서양 근대 사상을 강력하게 지배해왔다. 이에 대해 사변적 실재론은 실재는 인간의 방식과 관계없이 존재하며, 인간의 개념적 도식으로 환원하지 않고도 ‘우리 없는 세계’를 가리키고 말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사변적 실재론이란 말 자체는 2007년 캉탱 메야수, 그레이엄 하먼, 레이 브라시에, 이언 해밀턴 그랜트 등이 참여했던 워크숍에서 비롯했는데, 상관주의적 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식은 사상가마다 제각각 다르다.

사변적 실재론에 영향을 미친 영국 출신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의 모습. 출처 웰컴 라이브러리

무엇보다 지은이는 사변적 실재론 가운데 자신이 ‘제거주의’라 부르는 경향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메야수의 경우 상관주의적 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고가 없어도 되는 세계, 누가 생각하든 안 하든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고자 했다. 이때 물질은 사고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생명, 진취성 혹은 활동적 힘이 결여되어 있는 순전히 무감각한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들을 아예 ‘제거’하여 즉자적이고 대자적인 객체를 남겨두는 방법인 셈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볼 때 이런 접근은 “물질 그 자체가 상관관계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수동적이고 관성적이어야 하며, 의미나 가치가 완전히 빠져 있어야만 한다고 가정”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치와 의미가 인간이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어,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도 가치와 의미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접근은 되레 ‘자연의 이분화’, 곧 “인간은 예외”라는 전제에 묶여 있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리고 화이트헤드로부터 제거주의에 빠지지 않고 상관주의를 벗어날 대안을 찾는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계기”, 곧 존재들은 언제나 “물리적” 극과 “정신적” 극이 결합한 “양극적”인 것이라 봤다. 그에게 사실과 가치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가치경험”은 인간 존재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공통 사실”로서 우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랍스터, 중성미자, 화강암 덩어리는 모두 우리가 규정하는 사고와 무관하게 그들 스스로를 가치평가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내적 경험을 하며, 존재가 무엇을 ‘느끼냐’가 그 존재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문제는 “정신성, 혹은 내적 경험이 애초부터 말하는 능력에 좌우되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박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답은 “박쥐 자신에게 박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서 찾아야 한다. 지은이는 이런 접근을 ‘범신론’으로까지 발전시키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면서도 우주의 생성과 창조성을 직시하는 새로운 길이라고 제시한다.

영국 출신 작가 귀네스 존스의 소설 <사물들의 우주> 표지. 자신의 생물학적 배출물을 도구로 쓰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시리즈로, 스티븐 샤비로는 이 작품이 “객체들의 생생함과 객체들이 우리와 관계하는 방식에 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인식론의 덫에 걸리지 않고 “사물들이 참으로 서로를 지각하는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지은이의 입장은 사변적 실재론 가운데 그레이엄 하먼이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객체지향 존재론’에 친화적이다. 다만 화이트헤드와 하먼의 차이점을 파고들며, 하먼이 “관계성 자체의 지위를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가 볼 때 하먼은 객체가 어떤 부분이나 관계, 이를 포착하는 방식의 합계로 환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든 객체는 그 자체로 어떤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때 객체들과 그들이 참여하는 외적 관계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이 존재하게 된다. “존재론적 물러남”을 말하는 하먼은 “가능적이거나 잠재적인 것을 말하는 어떠한 철학도 거부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여기에 “현실적 존재는 다른 현실적 존재 안에 존재한다”며 변화와 창조의 가능성을 말하는 화이트헤드를 끌고 온다. 사물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관성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로 자신 이외의 사물을 촉발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각자의 진공 속에 갇힌 ‘실체’의 세계와 달리, ‘관계’의 세계에서는 존재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촉발하고 만지며 관통한다. 이런 관계성을 직시할 때,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우리는 “동료 피조물들의 민주주의 속에서 우리가 소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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