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는 이야기

한겨레 2021. 12. 1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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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반드시 만나야 할 친구가 있다.

내 친구는 12월에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지만 오미크론으로 인한 열흘간의 자가격리 때문에 고심 중이다.

다음 장면이 내가 친구에게 그대로 읽어준 부분이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 친구를 만나면 내내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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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한겨레Book]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지음, 주민아 옮김 l 판미동(2021)

내게는 반드시 만나야 할 친구가 있다. 내 친구는 12월에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지만 오미크론으로 인한 열흘간의 자가격리 때문에 고심 중이다. 친구의 체류 기간은 길지 않다. 과연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만나서 말하려고 기억해두었던 이야기 중 가장 좋은 다섯개를 하나씩 전화로 들려주었다. 나는 그중 어느 이야기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아무래도 마지막 이야기가 제일 신비로운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헬렌 맥도널드의 <저녁의 비행>에 나온다. 칼새 이야기다. 칼새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마법의 영역에 속하는 속성을 지닌 새다. 어느 날 헬렌은 템스강가에서 죽은 칼새 한 마리를 주웠다. 그녀는 어쩐지 죽은 새를 바깥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수건으로 감싸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이듬해 5월 겨울을 나고 맨 먼저 돌아온 칼새가 구름 밑에서 날아오를 때, 헬렌은 그 죽은 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헬렌은 냉장고 안의 새를 꺼내서 봄 햇살을 받아 이제 막 따뜻해진 땅에 살며시 묻어주었다.

헬렌이 성스럽게 여기는 칼새는 절대로 땅에 내려오지 않는다. 칼새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하늘에 떠 있는 곤충을 먹고 하늘을 날면서 짝짓기를 한다. 어린 칼새는 둥지를 떠나면 2년이나 3년 동안 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둥지는 하늘에서 잡아챌 수 있는 것들로 만든다. 상승 온난기류를 타고 온 마른 풀, 털갈이를 끝낸 비둘기 가슴 털, 꽃잎, 나뭇잎, 나비, 종잇조각. 여름날 저녁, 알을 품거나 새끼를 돌보는 무리가 아니라면 칼새는 갑자기 무슨 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 저 멀리로 올라가 사라진다. 칼새가 이렇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베스퍼 플라이츠(vesper flights), 저녁 비행이라고 부른다. 베스퍼는 라틴어로 땅거미 지는 저녁을 뜻하고 거기서 유래한 단어 베스퍼(스)는 하루를 마치면서 올리는 경건한 저녁 기도의 의미를 품게 되었다. 저녁 비행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단어다.

칼새는 하늘에서도 제대로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눈을 다 감은 채 렘수면 상태로 하늘에 떠 있다는 뜻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특별 야간 운행을 하던 프랑스 조종사가 1만 피트 상공에서 엔진을 끄고 적의 경계선 쪽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보름달이 환한 밤이었다. 다음 장면이 내가 친구에게 그대로 읽어준 부분이다. “갑자기 우리가 낯선 새들 사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새 떼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아니 적어도 눈에 띌 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밑으로 불과 몇 야드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많은 새들이 드넓게 쫙 흩어져 있었다. 마치 그 밑의 하얀 구름바다를 뚫고 갑자기 나타난 것 같았다 (…)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은 마치 보름달에 반사된 빛이 비추는 앙증맞은 까만 별무리 같았다.” “그 머나먼 하늘, 차가운 공기, 고요함, 흰 구름 너머 높이 날던 새들은 잠을 자면서 그대로 하늘에 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어주는 동안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한 부분이 자꾸만 떠올랐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 친구를 만나면 내내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다.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는 이야기.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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