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 나만 없어, 고양이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1. 12.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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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요다, C-print, mixed media, 2016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건 아주 최근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현생 인류는 굶어 죽기보다 비만으로 죽는 게 더 두려운 경험을 처음 하는 중이다. 먹을 걱정을 면했다고 걱정이 사라졌을 리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단계별로 정리해온 심리학자들은 섭생과 같은 기본 욕구 다음엔 친밀감이라는 숙제가 온다고 했다.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주요 과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친밀감에 기초한 관계, 즉 가족이나 연인, 친구는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안전망이다. 요즘처럼 이불 밖이 위험할 땐 더 그렇다.

권오상은 ‘데오도란트 타입’이라고 부르는 완전히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은 폴리스틸렌으로 입체적 형태를 잡아 허를 찌를 만큼 가볍고, 표면에 사진을 이어 붙여서 생생한 시간의 기록이 된다. 그의 작품 중 유난히 작고 반짝이는 ‘산(2019)’은 당시 세 살이었던 맏이를 모델로 만들었다. 신혼 때부터 고양이 쿠마와 요다를 키우면서 올망졸망 아이 셋을 낳아 일곱 식구 대가족을 꾸린 작가는 평범한 아빠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진에 담는 것처럼, 가족을 찍어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가족 사진 대신 가족 조각이 만들어진 셈이다.

권오상, 요다, C-print, mixed media, 2016

요다(2016)’는 작가가 제작한 가족 조각 중 하나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요다를 꼭 닮은 귀가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한참 눈을 맞추다가 작가에게 고양이 요다에 대해 물으니 ‘온기를 나누어 주는 존재’라는 답이 돌아온다. 털이 없는 품종이라 추위를 많이 타서 사람에게 잘 다가와 붙는다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 따스함이 배어난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친밀함도 시간 속에서 의미 있게 구축된다. 친밀한 관계가 부러운 건 시간이 만들어낸 연대가 귀하기 때문이며, 가족이 소중한 건 사랑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와 사랑은 어렵게 훈련하고 쌓아가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빛을 발한다.

더 추워지기 전에 고양이를 입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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