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악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노석조 기자 2021. 12.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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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與野) 어느 대선 후보 가릴 것 없이 “이건 좀 잘못됐다,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게 부동산 정책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지난 7일 간담회에서 집값 폭등, 전·월세 부족 등을 성토하는 청년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한 청년은 “전세 살던 동생이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후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 요구에 쫓겨나다시피 나와 엄동설한에 집을 구해야 했다”고 했다. 이 후보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죄악”이라며 “행정을 구체적으로 모르고 정책을 집행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고 있다./뉴시스

부동산 대란의 원인은 과도한 대출 규제, 종부세·양도세 강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임대차 3법’이다. 일반 정책 차원을 넘어 법률로 명문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크다. 작년 7월 시행된 지 1년 반도 채 안 됐는데 각종 부작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여권은 당초 이 법을 통해 보증금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대료가 더 큰 폭으로 올랐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근거로 보증금을 5%만 올리자고 하면, 집주인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입주하겠다”고 해 결국 보증금을 15~30%가량 올리는 일이 속출한 것이다. 최근 6개월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임대차(전·월세) 거래를 보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전체의 25%(1만2950여 건)에 불과하다.

전세 시장에서 같은 매물을 놓고 3개의 전세가가 떠도는 ‘3중 가격’ 현상도 벌어졌다. 신규 계약인지 갱신 계약인지, 이 가운데서도 갱신청구권이 적용됐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같은 평수 전세의 최저·최고가 차이가 6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시장이 망가지며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임대차 3법은 악법’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악법은 작년 2월 여당 박모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당시 야당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다. 오랜 기간 형성된 전세 시장에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면 각종 부작용이 생기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야당은 “민생 법안이니 진영 논리를 떠나 좀더 숙의 과정을 거치자”고 했다. 하지만 여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했다. 당시 박 의원은 자기 업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요즘 ‘임대차법’의 ‘임’자도 꺼내지 않는다.

이 입법 실패의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하나? 여당이 언론에 들씌우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법을 발의한 의원과 정당에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국민에게 끼칠 손해에 징벌적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감히 이런 악법을 만들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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