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K대중문화, 관객의 힘

주장훈 스포츠컬럼니스트·’스포츠도 덕후시대’ 저자 2021. 12.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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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열리는 미시간대-오하이오 주립대의 대학 미식축구 라이벌전은 미국 스포츠를 통틀어 최대의 라이벌전 중 하나로 꼽힌다. 며칠 전 이 라이벌전에서 지난 6년간 5전 6기 끝에 처음으로 승리한 짐 하버 미시간대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야구 격언을 가져와 뼈 있는 말을 내뱉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3루 베이스에 서 있는 게 자신이 3루타를 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상대 팀 감독이 전임자들이 이룬 성과 위에서 너무 쉽게 출발한 것을 은근히 꼬집은 것이었다.

야구에서 3루는 오묘한 베이스다. 홈과 가장 가깝지만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잔루가 되면 오히려 흐름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게다가 3루는 빠른 발은 기본이고 다른 팀원들의 희생타, 감독의 작전, 팀의 평소 훈련, 상대편 실책, 3루 주루 코치와 선수들의 신뢰 같은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비로소 밟을 수 있다. 여기에 홈까지 밟으려면 동료의 희생타나 후속타, 최소한 상대편의 실책이라도 동반돼야 한다.

3루 생각을 하다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리 ‘K문화’가 떠올랐다. 분명 한국 문화는 현재 2루보다는 홈에 더 가까운 3루에 와 있는 듯하다. 이 역시 누군가의 강력한 한 방만으로 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비디오 테이프와 DVD 홍수 속에서도 커피값⋅담뱃값 아껴 가며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했다. 문화와 사람이 모이는 중심지에는 어김없이 멀티플렉스가 세워졌고 컴포트관, 키즈존, 4D, 아이맥스, 사운드존 등 다양한 기능들을 더해가며 진화했다. 인구가 1억명 절반 수준인 한국이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박스 오피스 기준 5~7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글로벌 영화 화제작의 주연배우 등이 대한민국에 들러 무대 인사를 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극장을 직접 찾는 ‘열성 팬’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의 까다롭고 꼼꼼한 안목을 만족시키느라 수많은 명감독과 명배우들이 배출됐고, 영화계 종사자들의 경쟁력이 강해진 것 아닐까. 이제 남은 3루에서 홈까지의 거리는 불과 27.4m. 이제 우리 문화, 콘텐츠계의 다른 분야에서도 계속 후속작들의 연타가 터지기를 기대해 본다.

주장훈 '스포츠도 덕후시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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