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미워하기의 기술

2021. 12. 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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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지고 살지 말아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척'(隻)은 옛날 소송에서 피고인 측을 일컫는 말이니, 사리의 옳고그름을 떠나 상대가 내게 악감정을 품어 뒤가 좋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까지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거나 정의를 내세우다 불의에 빠지게 된다면 가난 못지않은 후유증을 낳는다.

대체로 그저 미워지는 사람은 상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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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지고 살지 말아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척’(隻)은 옛날 소송에서 피고인 측을 일컫는 말이니, 사리의 옳고그름을 떠나 상대가 내게 악감정을 품어 뒤가 좋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잘 넘기면 좋겠지만 세상살이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문제이다. 공자는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논어 ‘이인(里仁)’)는 명언을 남겼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데도 일종의 자격을 부여한 셈인데, 거꾸로 말하자면 자격이 부족한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든 미워하든 탈이 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용기를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도 난(亂)을 초래하는 것이요,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게 너무 심한 것도 난을 초래하는 것이다”(논어 ‘태백(泰伯)’)라고 했다. 세상 어떤 일에서든 처음 시작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낡은 세력의 저항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미래를 헤치고 나갈 젊은이들을 만나면 용기를 북돋는 주문을 많이 하게 된다. 가난한 젊은이에게도 앞으로의 삶은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격려해줄 수 있을 텐데, 묘하게도 ‘용기를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을 한 짝으로 붙여놓았다.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까지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거나 정의를 내세우다 불의에 빠지게 된다면 가난 못지않은 후유증을 낳는다. 가난을 넘어서기 위해 과격하게 나서게 될까 경계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질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고 미워하기는 해야 하지만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을 경계했다. 어질지 못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해 역효과를 낸다면 세상이 어지럽게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적당히 미워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상대의 잘못만큼 미워하는 비례식을 세우기도 쉽지 않거니와 때로는 그보다 크거나 작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인데, 이럴 때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워두면 된다. 그저 미운 사람이어서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저 미워지는 사람은 상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까.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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