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 팔면 벌금 1억..대선 후보들, 이 공약 어때요"

강한들 기자 2021. 12. 9. 21: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남고 학생들, 기후위기 수업에서 정책 제안 봇물

[경향신문]

서울 동작구 성남고등학교 1학년 7반 학생들이 지난 1일 대통령 후보에게 제안할 정책 3가지를 만들어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친환경 수송분야에 가장 관심
재활용 불가 플라스틱에 벌금
재생에너지 사용 대폭 확대
급진적이지만 구체적 논쟁도
“환경 공약 때 한번쯤 고민을
세대 관계없이 함께 해결해야”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까지 퇴출하고, 그 이후 기업의 판매 건수당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겠습니다. ”

지난 1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성남고등학교에서 ‘기후위기’ 수업 중 한 학생의 주장이다. 성남고는 이날 1·2학년 총 24개 학급, 662명을 대상으로 수업 시간에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에게 정책 제안을 하는 활동을 했다. 에너지전환 마을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성대골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의 에너지기후강사 12명이 각 학급에서 기후위기의 현 상황에 대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조별로 당을 만들어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들었다.

■기후위기는 ‘내 문제’
애초 성대골 ‘에너지기후강사’들은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강사들은 ‘내일이 오길 바란다면 바로 오늘 과감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호소한 투발루 외무장관의 사진을 시작으로 파리협약,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탄소중립, 탄소국경세 등 학생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내용들을 강의했다.

하지만 강사들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이내 드러났다. 학생들은 탄소중립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라 답하고, 탄소 흡수원을 묻는 질문에도 “나무” “땅” 등 각기 다른 흡수원을 대답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방식도 수력, 조력, 지열, 태양광, 풍력을 읊었다. 학생들은 기후위기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부가 탄소중립 달성 목표연도로 잡은 2050년이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위기감도 느끼고 있었다. 엄모군(16)은 2018년 40도에 달하는 폭염 때 기후위기라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고 했다. 엄군은 “2050년엔 제가 45세이고, 아빠 나이보다도 훨씬 어려 한창 사회서 활동하고 있을 때”라며“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인생의 절반 정도를 그런 심각한 위기 속에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수송 분야’가 최대 관심

학생들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했다. 내연기관차를 2035년까지 퇴출하고, 그 이후에는 건당 1억원의 벌금을 기업에 부과하자는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 학생이 “1억원은 너무 과하지 않냐”고 하자 다른 학생이 “그러니까 팔지 말라는 거지, 모닝 하나 팔고 1억원 내라고 하면 안 팔겠지”라고 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해 “2030년은 너무 빠른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자 다른 학생이 “그렇게 생각하다가 2021년까지 밀린 것”이라며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급진적일 필요가 있다”며 논쟁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수송 분야였다.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고, 전기·수소차를 활성화하자’거나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자’는 등의 공약이 295개의 공약 중 105개를 차지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선 항공편을 폐지하자, 불필요한 공항을 없애자는 제안도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하자는 에너지 체제 전환도 학생들의 관심사였다. 2028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0%, 2040년까지 8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정책을 낸 학생도 있었다. 일회용품 규제 등 자원순환과 관련한 정책도 많았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플라스틱에 1㎏당 2200원의 세금을 부과하자, 분리배출이 힘든 정도에 따라 등급으로 나눠 생산 금지, 생산 시 탄소세 부과 등 조치를 하자는 제안도 보였다.

성대골과 같은 에너지전환 마을을 확대하자는 정책을 낸 한준영군(17)은 성대골 에너지전환 마을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성대골 전통시장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에는 곳곳에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가로등에도 작은 패널이 달려 있어 낮에 흡수한 에너지로 밤거리를 밝혔다. 한군은 “에너지전환 마을이 늘어나면 그 마을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도 저희 학교처럼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제안, 대선 후보에게 전달

환경교육을 통해 환경을 생각하는 세대를 길러야 한다는 정책을 낸 김현빈군(16)은 “(후보들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있구나 하고 한 번은 신경 쓰고 고려해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준영군은 “불가능해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 의견을 보고 공약을 내걸 때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때로 너무 거대한 문제로 보여, 기성세대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우리가 할 수 있겠냐’라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의심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 함께해보자’고 말했다. 엄지섭군은 “이제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며 “나이가 엄청 많지 않은 이상 본인에게도 확실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군 역시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기성세대도 노력해 기후위기 인식 교육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제안한 정책은 다음달 중순 이후 성대골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을 통해 각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