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팔도 고향론
[경향신문]
가장 가까이서 자란 대통령 부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이다. 마산(옛 창원군)에서 태어난 권 여사는 김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뒷집으로 이사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다음으론 최규하(원주)와 홍기(충주), 김영삼(거제)과 손명순(김해), 노태우(대구)와 김옥숙(청송), 박정희(구미)와 육영수(옥천)의 순서가 될 것이다. 가장 멀리서 태어난 부부는 이승만(황해 평산)·프란체스카(오스트리아) 부부이다. 친노 원로가 2002년 대선 때 “우리는 (후보 부부의) 고향이 같아서 손해”라고 농반진반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정치인의 지연(地緣)은 다다익선이라고 할 때였다.
유난히 지역연고를 입에 올린 이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다. 그는 ‘호남의 손녀’ ‘충청의 딸’ ‘동작의 딸’을 자칭했고, 둘째 아들을 낳은 곳이라며 ‘부산의 어머니’라고도 했다. 당 안팎의 선거나 정치 고비마다 여러 지연을 꺼냈지만, 그로 하여금 “팔도가 고향”이란 핀잔까지 듣게 한 것은 ‘부산의 어머니’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충북·충남도민회 행사에서 “충청은 제 선대부터 500년간 살아온 뿌리이자 고향”이라 말하고, 재경광주전남향우회 간담회에선 “호남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하루에 두 곳에서 고향 얘기를 한 것이다. 2000년대 초 광주지검에서 일한 시절을 그는 “정이 많이 든 곳”으로 술회했다. 윤 후보는 지난 4월 검찰총장직 사퇴 직전 찾은 대구에서도 “초임지였고, 어려웠던 (박근혜 정부) 시기 따뜻하게 품어줬던 고향”이라고 했다. “○○의 아들·딸”이나 “○○의 사위·며느리”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많다. 그러나 윤 후보처럼 여기저기를 ‘고향’이라고 하는 이는 드물다. 외가가 있는 강릉이나 나서 자란 서울은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진다.
이은상은 시조 ‘가고파’에서, 정지용은 시 ‘향수’에서 고향을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곳으로 그렸다. 그런 고향도 정치 문턱을 건너면 귤과 탱자처럼 달라진다. 연고지 거론이 잦으면, ‘팔도고향론’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사는 곳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동질감은 성·세대·직역·계층으로 빠르게 분화하고 있다. 지역 갈라치기보다 비전과 해법을 다투는 정치가 시대 흐름에 더 맞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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