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 이문구 [채영신의 내 인생의 책 ⑤]

채영신 소설가 2021. 12. 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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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향신문]

작가들에겐 아마 작가의 꿈을 품게끔 만든 작가와 책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그 책이 이문구의 <우리 동네>다. 소설을 읽는다는 게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나는 이 책을 통해 경험했다. 책을 읽는 동안 행복하다고 했는데, 실은 이 책은 ‘우리 동네 김씨’부터 ‘우리 동네 황씨’까지 아홉 명의 화자를 내세운 연작소설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우리 농촌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각한 이야기다. 도시의 소비문화가 유입되며 농촌은 생명의 기반이라는 자긍심을 잃고 소비 피라미드의 맨 아랫단에 깔리고 만다.

이 소설의 중심 정서는 이 속에서 농민들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불만과 좌절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한숨을 폭폭 내쉬다가도 키득대기를 멈출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작가의 넘치는 입담 때문이었다. “엄니, 불 좀 켜봐, 다 밝었잖여” 하는 아이에게 “다 밝었다메 불은 지랄하러 키라남?” 하고 대꾸하고, 친구 따라가서 징글벨만 보고 오게 오백 원만 달라는 아이에게 “니미는 늬 애비 만난 뒤루 돈 안부 끊겨서, 오백 원짜리에 시염이 났는지, 천 원짜리가 망건을 썼는지, 질바닥에 흘린 것도 못 알아봐서 못 줍는단다” 하고 대꾸하는 리씨 아내며, “으른은 네미- 이 자리에 으른은 뉘구 애는 뉘여. 댓진 바를 디다 곤지 찍구 있네” 하는 황씨의 말에 웃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는데, 어느 장을 펼쳐도 이 정도 입담은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소설의 배경인 충남 보령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 고향에 갈 때마다 보았던 어른들이 우리 동네 김씨고 우리 동네 황씨다. 막막하고 외로울 때마다 나는 울고 웃을 준비를 하고 이 책을 아무 데나 펼친다.

채영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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