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들, 고향 대신 '초남이 성지'에 묻힌 이유는..

박용근 기자 2021. 12. 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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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세미나서 "가족 대신 신앙공동체가 장례 주도 유력"

[경향신문]

230년 전 전북 전주에서 순교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세 순교자가 그들의 고향이 아닌 전북 완주군 초남이 성지에 묻힌 데에는 초남이 성지를 기반으로 하는 신앙공동체의 역할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윤덕향 전 전북대 교수는 9일 완주문화재단 복합문화지구 누에에서 열린 ‘초남이 성지 역사 재조명 학술세미나’에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1759~1791년)과 복자 권상연(야고보·1751~1791년)은 1791년 12월8일 현재의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에서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묘지에는 11개월이 지난 1792년 11월25일에 안장된 것으로 기록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전 교수는 “장례기간이 비상하게 긴 것과 생장지(전라도 진산, 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가 아닌 완주 이서 초남이에 묻힌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연이나 혈연에 따른 집단이 두 순교자의 장례를 주도했다면 굳이 초남이를 장지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경위가 분명하지 않지만 초남이로 장지를 선택한 것은 이 일대를 지역적 기반으로 하는 집단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남이 일원은 유항검 일가가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世居地)였으며, 유항검은 18세기 후반 호남 천주교의 핵심적 지도자”라며 “따라서 두 순교자의 장례에 어떤 형태로든 유항검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전 교수는 윤지충의 동생인 윤지헌(1764~1801년)의 무덤과 관련해 “유배형을 받은 처자식이 매장의 주체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윤지충, 권상연 순교자 무덤이 있는 곳에 자리하고, 두 사람의 무덤과 비슷한 방향으로 장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순교자 무덤의 매장 주체와 직간접적인 접촉이나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지헌은 완주군 고산면(현 운주면)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능지처사형을 받았다. 이때 유항검 가족도 모두 순교했다.

윤 전 교수는 “권상연과 윤지충·윤지헌 형제의 무덤으로 확인된 3호, 5호와 8호를 조성한 주체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 일가의 무덤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된다”며 “유항검 일가와 윤지헌을 매장한 주체는 같은 집단이거나 최소한 상호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초남이를 중심으로 유항검 일가의 무덤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실체와 관련한 조사가 충실히 이뤄진다면 조선 후기에서 개화기로 이르는 시기의 사회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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