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건강 손상도 산재보험으로 보호 '태아산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이혜리 기자 2021. 12.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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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임신 중인 노동자가 유해·위험 요인에 노출돼 자녀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거나 사망한 경우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태아산재법’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임신 중인 노동자가 유해·위험 요인에 노출돼 자녀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더라도 산재로 인정할 근거가 없었다. 이번 개정안은 그런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보고 자녀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의 종류를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직업재활급여 등으로 명시했다. 사망 시에는 유족에게 장례비가 지급되도록 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임신부에 유해한 약품 분쇄작업을 했다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생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태아의 건강 손상이나 출생아의 선천성 질환이 어머니인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본 최초의 판례다.

당시 판결에서 대법원은 “산재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 여성 근로자와 모성을 보호하는 헌법의 취지를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출생 이후 태아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됐다거나, 태아의 건강 손상 때문에 여성 노동자의 노동능력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지난 5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3명이 어머니로서 태아에 대해 산재 신청을 했다. 지난 1일에는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가 아버지로서 태아에 대해 산재 신청을 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유해요인에 노출돼 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법은 시행일 전에 출생했더라도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거나 법 시행일 전에 산재 신청을 한 경우, 증상발현이 늦어 시행일 이전에 신청하지 못한 경우 시행일로부터 3년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시행일 이후 출생한 자녀에게만 적용할 경우 업무상 재해로 건강이 손상된 자녀를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가 약화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노동부는 “업무상 재해로 인한 건강손상 자녀들이 개정법의 혜택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개정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 시행일은 공포 후 1년부터다.

노동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이번 태아산재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그간 한국 사회에서 태아산재, 유산, 불임, 생리불순 등 생식독성 문제가 수면 아래에 있었던 만큼, 앞으로 생식독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장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태아 산재 문제 해결의 시작으로, 법 시행까지 많은 피해자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피해자 발굴 지원, 태아 산재 신청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며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남성 근로자도 태아 산재를 신청했는데 이러한 분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향후 아버지의 유해요인노출, 생식독성물질 관리 강화 등 후속 법 개정도 함께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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