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尹 대통령되면 안되겠다 싶어 권력구조 개편 얘기하러 출마" [고견을 듣는다]
고도성장기 효율적 권력집행 필요했지만 사회·권력 다원화된 지금은 제도바꿔야
여당 의원중 개헌·내각제 꺼내는 사람 누가 있나.. 민간에 개헌 추진 세력 많아
[]에게 고견을 듣는다 손학규 20대 대통령 선거 무소속 후보·前바른미래당 대표
"청와대냐 감옥이냐." 유력 양당 대선후보에 덧씌워진 불명예스러운 말이다. 두 후보 각각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처럼 대통령 후보가 비난을 받고 무시되는 경우는 없었다. 국민에게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 자질뿐 아니라 아직까지 두 유력 후보들은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그랜드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고 일찍이 보지 못한 지정학적 갈등이 조성되고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대전환기에 지엽단말적 이슈에 매몰돼 있다. 특히 아쉬운 것은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공유돼온 정치 개혁이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립적 권력구조를 고치지 않고서는 지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독단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지난 달 말 불쑥 출현한 정치인이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다. 적잖은 국민들은 "웬 손학규" "또 손학규?"라는 비아냥을 보냈을 것이다. 출마 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손 후보도 그걸 예상하고 "마음껏 조롱해도 좋다"고 했다. 다른 반응도 그못지 않았다. 기사 댓글에 "찍을 후보가 없었는데 이제야 찍을 후보가 나타났다"고 쓴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비판과 현실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손 후보가 대선 출마를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견을 듣는다]도 그의 생각을 가감없이 듣고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손 후보는 그 특유의 유려하고 술술 넘어가는 목소리로 목적을 명료하게 밝혔다. 그는 "대선이 진행되는 걸 보니 국가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생명이 다한 87 헌법체제의 권력구조에 대한 얘기가 한 마디도 없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한국 정치의 소모적 대립을 끝내고 의회 중심의 다원적 권력구조로 가야 하고, 그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대선에 출마했다"고 했다. 손 후보는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것이 당선에 앞선 출마 목적이라고 했다.
손 후보가 권력구조 개혁 등 개헌 필요성을 꺼내자 각당에서도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9일 차기 정부에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본보 회의실에서 가졌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이번엔 예선 치르지 않고 곧장 본선으로 직행하셨습니다.
"(웃음)제가 대선을 제일 잘 준비를 했던 게 18대 대선(2012년)이었는데, 그때 제가 춘천에 있다가 나와서 민주당의 대표로 당선이 됐고 대표로 있으면서 문재인 이해찬 이런 분들하고 야권 통합을 했죠. 한국노총까지 포함시켰으니까요. 박지원 대표 같은 분이 손 대표가 그냥 있으면 민주당 대표가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때 형세가 야권에 불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야권 대통합을 하신 듯한데요.
"그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우리 민주당 혼자 야권 통합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 자신은 후보가 될 자신이 있었죠. 그런데 결국 경선에서 졌어요."
-작년 총선 이후 정치적 활동이 거의 없었는데요.
"사실 제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2020년 4·15 총선 지원하고 그걸 마지막으로 정치를 끝냈습니다. 놀았습니다. 산에 다니고 책이나 보고 TV나 보고 친구들하고 막걸리나 마시고 완전히 놀았어요. 근데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걸 보고, 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에 대해 개인적인 인격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국민들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진행되는 걸 보니까 국가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요. 선대위가 꾸려지면서 정책 선거다 뭐다 이런 얘기들을 하지만 대개 포퓰리스트적인 정책이 대부분이잖아요.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국가 권력 구조에 대한 얘기가 한 마디도 안 나와요. 개헌의 '개'자도 안 나옵니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개헌과 함께 선거법도 고쳐야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제가 3년 전(바른미래당 대표 시절)에 열흘간 단식을 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서. 사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그 자체가 아니라 대통령제를 끝내고 의회 중심 제도로 바꿔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의회 구성을 양당제만 갖고는 안 되겠다, 양당제는 끝없는 싸움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연립정부를 할 수는 없는가, 그러면 통합이 되고 정책적인 연결이 된다고 봤습니다. 단식 한 지 7~8일쯤 됐을 때까지 몸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추워지니까 몸도 추워지고 이러니까 내 목숨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나름대로 정말 절박한 생각으로 했었던 거죠."
-그런데 결국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많은 우려를 했는데, 선거법 협상과정에서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아주 누더기가 됐죠. 거기에다 공수처까지 해갖고서는 참 부끄럽게 됐어요. 그나마 제가 약간의 기대를 했던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연동형이라는 단어라도 좀 건지자는 거였어요. 그러면 앞으로 실제 해나가면서 바꿔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의회 권력 구조가 바뀌고 대통령제는 안 된다, 87년 체제를 청산하자 이런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 기대를 했어요. 근데 지금 와서 보니 연동형은 아주 흔적도 없는데다가, '위성비례정당'이라는 희한한 것이 생겨났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튼 권력구조에 대한 한마디 얘기도 없이 양당 후보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안 되겠다, 나라도 나서서 권력구조의 개편을 얘기해야겠다고 해서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겁니다."
-18대 대선 때 가장 준비를 많이 하셨는데, 패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공학적인 정치에 밀렸습니다. 그게 결국 뒤에 보니까 '드루킹'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야권 통합을 하는데 저쪽(민주당 구 당권파)의 조건이 '너희들 원하는 대로 다 해라, 당명도 민주당으로 써도 좋다'고 했어요. 단, 국민경선만 하라고 했어요. 국민경선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게 알고 봤더니 모바일 선거였더라고. 모바일 선거에서 저 사람들이 대단한 준비를 한 거예요."
-상대쪽 준비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었네요.
"심지어 제주도에 경선 하러 갔는데 우리 지지자들이 '여기는 뭐 그냥 우리가 이깁니다' 그래요. 저 사람들은 아예 선거 운동도 안 합디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전망을 했거든요. 그런데 까보니까 대의원 투표에서는 우리가 2대 1로 이겼는데 모바일 선거에서 형편없이 진 거예요. 그 뒤 4년 후 나중에 보니까 '드루킹'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대표님의 캐치프레이즈가 '저녁이 있는 삶'이었는데,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책도 나왔고, 한 1~2년간 자문교수단과 세미나와 토론회를 매주 토요일에 한 서너 시간씩 해서 공약과 정책도 개발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정책 자료집이 당내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베껴갔고 당 외에선 박근혜 후보가 베꼈습니다."
-그런 정책 구상이나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으시나요.
"저는 학생운동부터 시작해 민주화운동으로 30대까지 다 보냈습니다. 노동운동하겠다고 구로공단에도 가 있어 봤고, 빈민구제운동 한다고 청계천에도 가 있었고, 도망도 2년 동안 다녔고 감옥 생활도 1년 하고 그랬어요. 그 과정에서 기독교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됐어요. 기독교 민주화 운동이라는 게 기독교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성격 때문에 세계 교류를 많이 했습니다. 그 일선 실무자가 저였어요."
-고생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1975년 10월 김지하 시인의 옥중 양심선언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 손으로 일본에 건너갔고 보도가 됐어요. 김지하 양심선언 첫 페이지는 김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써서 보냈어요. 마지막 페이지도 김지하 시인이 교도소 화장지에다가 직접 육필로 쓴 거였어요. 근데 그걸 그대로 내보낼 수가 없잖아요. 인터넷과 컴퓨터도 없었고. 등사를 하거나 타자를 쳐야 되는데 서울에서 타자를 안심하고 맡길 사람이 없었어요, 유신 때니까. 그래서 그걸 들고 버스를 타고 춘천 수녀원에 갔습니다. 수녀님이 이걸 치는데 수녀도 못 믿어서 옆에서 지켜봤어요. 스텐실로 접어 갖고 서울에 와서 프린트를 해 사진 찍어서 일본으로 내보낸 거죠."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다 알려졌지만,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에서 가장 강조해 주장한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인데요. 결국 권력구조 개편이고 개헌으로 연결되는데요. 현재 우리사회에 개헌 추동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겁니다. 대통령제의 폐해는 말도 못합니다. 한 말씀만 드릴까요? 지금 윤석열 후보가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됐습니까? 작년 이맘때 그분이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 누가 꿈이나 꿨겠습니까.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든 건 대통령제 폐해 때문입니다. 아니, 윤석열 후보를 누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고 누가 검찰총장에 임명했습니까. 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에 임명했을 때 이 정부의 말을 거역했습니까? 아니죠. 중앙지검장 때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한 사람입니다. 이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정책에 의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던 사람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등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단죄하려고 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추미애 장관 내세워 탄압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대통령이 임명했던 검찰총장이 불과 반년 만에 상대방이 된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대통령과 집권당은 모든 걸 갖고 있는데, 아닌 쪽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빈껍데기거든요. 그러니까 끝까지 권력 쟁취만을 위해서 싸우는 거지요. 윤석열이 인기가 높으니까 앞뒤 안 재고 당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란 거 아닙니까."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이제 웬만한 국민들이라면 다 압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제를 더 선호해요.
"우리나라 대통령처럼 모든 권력을 다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아니,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하면 뭐 합니까. 대통령이 그냥 무시해 버리잖아요. 인사권을 다 쥐고 있잖아요. 부처 국장부터 심지어 과장까지, 국영기업체 공사의 사장, 감사에 사외이사까지 다 청와대에서 하잖아요. '그 사람 지난번 선거 때 무슨 일 했어?' 이게 기준이 됩니다. 청와대 인사수석부터 없애야 돼요. 청와대가 너무 비대해져서 장관이 청와대 수석 결재 받고 실·국장들은 비서관 결재 받고 그러잖아요. 일자리 비서관이 왜 필요해요? 대통령이 취임 초에 일자리현황판도 만들고 일자리 수석을 만들어 놨는데 지금 일자리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각이 청와대 하수인이고 청와대에서 모든 걸 다 하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 권력이 워낙 강하니까 내부에선 견제가 안 되고 야당은 권력을 쥐려고 죽기살기로 싸우는데만 혈안인 겁니다."
-정치가 권력을 쥐는 게 목적이 돼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국민을 대리해서 나라살림을 하는 건데요.
"시장에 나가면 싸우지 좀 말라고 해요. 그 싸움이 어디서 생겼느냐, 권력투쟁에서 생긴 겁니다.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까지는 그런 대로 고도성장을 하고 효율적인 권력 집행이 필요했는데, 이제 사회가 다원화되고 권력도 다원화되고 있거든요. 아니, 당 대표하고 대통령 후보하고 싸움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권력도 다원화 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개헌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다 중도에 그쳤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겁니다. 민간에도 개헌 추진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강원룡 목사님 아드님 강대희 씨가 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와 이삼열 교수가 있고요.곧 세미나도 한다고 합니다. 노동부장관 하셨던 이상수 변호사, 원로 정치인 이홍구 전 총리도 개헌론자입니다. 국회의원들 중에도 개헌론자들이 많습니다. 생각은 갖고 있는데 말을 못합니다. 이낙연 전 총리도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내각제 개헌론자였습니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같은 사람도 대표적인 개헌론자였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여당 국회의원 중에 내각제나 개헌을 얘기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실제로는 많은데 대통령제 하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를 못하는 거예요."
<2부 기사 '대선판 포퓰리즘 만연…국운상승 기회 못살리고 추락할까 걱정'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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