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협약 70년, 한국의 난민은

한겨레 2021. 12. 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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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올해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이 유엔에서 채택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내후년이면 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고 난민제도를 갖춘 지 30년, 난민법을 제정한 지 10년이 된다. 한국의 난민제도는 그동안 어떻게 자리매김해왔고 앞으로 어디를 향할까. 2021년, 난민에 관한 몇몇 판결과 사건을 통해 한국의 난민을 본다. 출신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국제적인 보호가 필요한, 돌아갈 수 없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이야기다.

최근 법원은 난민 심사 과정에서 작성되는 면접조서가 담당 공무원과 통역에 의해 허위 내용으로 부실하게 작성되어 난민 불인정 처분에 이르게 되었음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조서는 “박해받은 적 없다” “돈 많이 벌면 돌아갈 거다”라는 식으로 신청자 스스로 난민이 아님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적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례가 유일하거나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심사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면, 심사관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심사의 내용을 조작하고 있다면, 그 제도는 이미 죽은 제도다. 다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고 당사자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통역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역이 사실을 왜곡하면 당사자는 진술권을 부정당한다. 1년 예산 몇백만원에 “한국말이 어눌해도 한국말을 하게 해야 당사자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통역 단가가 낮게 책정되어 통역하려는 사람이 없어 예산이 남는다”는 난민 담당 공무원들의 엽기적인 진술이 있었던 초창기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한 것이라고 자위해야 하나.

얼마 전에는 법원에서 난민 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난민지침) 중 체류 지침에 대한 법무부의 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난민지침이 난민 신청자의 권리 의무와 실제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공개하더라도 국가 안전보장 및 공정한 공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십수년 전에 대법원까지 난민지침 공개의 필요성을 확인했음에도 법무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초지일관 지침의 공개가 난민 인정 절차의 악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별도의 절차를 통해 방지해야 하는 것이고, ‘난민 인정 절차의 투명한 공개를 통한 난민 인정제도의 민주적 통제는 법 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됨과 동시에 공공의 안전과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난민 인정 판단과 처우 기준 등의 비공개, 그 불투명성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기이한 논리가 현행 난민제도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예전 소송에서 유엔난민기구에 대한 사실 조회를 통해 다른 나라의 난민지침 공개 상황을 파악했다. 난민지침을 사실상 통으로 비공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 정부는 그동안 현지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 일했던 아프간인들을 피난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예전 제주 난민 상황에서처럼 난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400여명에 이르는 이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로 명명하며 한국으로 데려왔다. 한국 정부에 조력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어 국제적인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기에 난민의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일부 국민들의 외국인 혐오, 난민 혐오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난민의 부정이어야 하는가. 이들에게는 난민으로서 권리와 처우가 보장되어야 하고 시설 구금의 가능성이 차단되어야 하는데, 맞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제도를 억지로 만들어내며 혐오국가의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난민제도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난민법의 제정이 그 하나일 것이고 관여하는 기관, 단체, 전문가들, 관련 연구 문헌의 수도 엄청 늘었다. 하지만 한국의 난민 보호 수준이 나아졌는가를 물으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행정절차법은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을 그 목적으로 규정하지만, ‘난민 인정’을 그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2021년은 난민 행정과 관련하여 행정의 불공정, 불투명, 불신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고, 혐오 세력 혹은 정서에 또다시 굴복하는 한 해였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걸까. 난민협약 70년, 난민을 제대로 바라보고 들을 수 있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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