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칼럼] '법 만능주의'부터 깨야한다

2021. 12. 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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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前여성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前여성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헌법재판소는 최근 '2회 이상 음주운전 금지규정을 위반한 사람을 가중처벌하는 구 도로교통법 규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세간에는 '윤창호법'으로 알려진 조문이다. 과거의 음주운전과 두 번째 음주운전 사이에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은 가중처벌에 해당하여 책임보다 형벌이 과도하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반복적 음주운전에 대한 강한 처벌이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중벌에 대한 무감각이 법질서의 안정을 해할 수 있다는 취지를 덧붙였다.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다. '국민의 법 감정'이 '법질서의 안정'과 상충할 수 있다는 건 '사려깊지 못한 다수결'을 꼬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새 우리나라는 '법 제조공장'으로 불릴 만큼 수도 없는 법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상적인 취지와는 달리 심각한 폐해를 불러오고 있다.

첫째, '분위기에 휩쓸린 졸속입법'이 법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무슨 일만 발생하면, 법부터 개정하라는 요구들이 빗발치고, 정치인들은 숨 고를 새 없이 졸속입법으로 화답하는 게 아예 관행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사람이나 사건 이름을 붙인 법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유다. 크고 작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법을 쉽게 바꾸고 툭하면 관련자 이름을 붙인다. 언론도 공식적인 법 명칭 대신 '아무개 법'이란 별칭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졸속으로 만든 건 하자가 숨어있다. 졸속입법도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법의 무게감이 추락해 준법의식이 희미해지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차제에 법 앞에 사람 이름 붙이는 관행이라도 좀 자제해야 한다. 언론도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법 앞에 사람 이름을 붙인다는 보도지침이라도 만들면 좋겠다. 법은 한 두 사람이 바꿀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힘으로 밀어붙인 강행입법'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국가의 시스템이 바뀌는 법안을 진중한 토론 없이 강행 처리했고, 법 개정에 수반한 정부 정책도 섬세한 숙의 없이 고속 추진했다. 후유증은 엄청났다.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임대차 3법은 전세가 폭등을 불러왔고, 일관성 없는 부동산정책이 관련 세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사유재산권을 무겁게 짓눌렀다. 부동산정책 여파로 자산가격이 엄청나게 치솟았고, 종합부동산세 파동은 빈부갈등만 부채질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역량이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공정성을 의심받는 지경이다. 그나마 혼인과 가족제도를 재편하는 평등법,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언론중재법 등은 거센 저항에 부딪혀 표류 중이다.

문제는 당장 법부터 고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법 만능주의의 환상'이다. 당장 기업들은 법을 제일 큰 리스크로 꼽고 있고, 국민들도 법이 불러온 재앙 속에 살고 있다는 푸념까지 하는 지경이다. 이쯤이면 '법 만능주의의 폐해'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법은 언제든 만들 수 있고,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정치인들도 '좋은 법' 만들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법부터 고치고 보자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국회는 법의 필요성부터 실효성, 부작용, 입법 여파 등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 찬반 토론을 적극적으로 하고, 정부나 민간이 부담할 사회적 비용을 산출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법에 손대기 시작해야 한다.

사실 '분위기에 휩쓸린 졸속입법', '힘으로 밀어붙인 강행입법'의 근본적인 원인은 헌법 수호 의지의 빈곤에 있다. 우리 헌법은 다수의 정치적 지배가 아니라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에 구속받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 다수결의 한계를 극복하는 헌법상의 장치들이 잘 작동해야 한다.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국가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고, 궁극적인 헌법수호기관인 국민의 감시도 철저해야 한다.

지극히 유감인 건, 다수의 횡포를 견제해 헌법을 수호하라는 공론에도 불구하고 '권력분립'과 '법치주의'가 후퇴했다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는 게 하나이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언론이 법 만능주의를 부추기는 경향마저 보인다는 게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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