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칼럼] 찬 바람 속에 떠오르는 슬픈 언니들
문정희 | 시인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조선 시대 시인 이매창의 절창이 떠오르는 스산한 계절의 끝자락이다. 황진이와 함께 16세기 이 땅의 빼어난 시인 중 한 사람인 이매창은 기생이라는 특수 신분과 함께 떠오르는 시인이다.
조선의 여성 시인들에게 시는 비단 치마저고리에 꽂힌 장신구였던가? 지금 읽어 보아도 낭창낭창한 정한(情恨)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명시를 남겼음에도 여성 시인들의 작품은 문학작품으로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보다 기녀라는 특수 신분과 함께, 흥미나 스토리와 함께 유보 조항으로 다뤄지곤 했다. 조선 시대 4천여수 시조 가운데 90여수 정도가 여성작인데, 그 작품들은 당시 시인 묵객이나 권세가가 여기(餘技)로 쓴 작품에 비해 예술성이 탁월함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나는 이렇듯 남성 중심의 유교 봉건 사회에서 슬프게 살다 간 조선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기생시집>(2000) 이라는 시선집을 펴낸 바 있다. 인간이 중심이 되지 못한 시대, 차별과 왜곡을 뚫고 살아남아 보석처럼 빛나는 시편들을 모으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눈물을 머금고 이 시집을 그만 절판시켰다. 출판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시바삐 새로 보완하여 제대로 된 시선집을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젠더의식은 그때도 매우 강했지만, 실은 그래서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지만, 좀 더 사려 깊고 섬세했어야 했다.
우선 시집 제목을 ‘조선시대 여성 시선집’ 정도로 해야 할 것을 참고문헌들과 그 당시의 관습적 분류에 따라 <기생시집>이라 붙이고 말았다. 의고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나의 천학비재가 부끄럽기 한량없다. 그 전에도 <역대 여류시가시조집>을 묶은 바 있는데 이 역시집에도 역시 “여류”라는 말을 쓴 것을 생각하면 조금 오싹하다.
최근에는 여류라는 말 대신 여성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전개되고 서구 여성주의 문학이론이 안착하기까지 우리는 별 의문 없이 여류라는 말을 쓰곤 했었다. 근대문학 초기부터 개화기를 거쳐오는 동안 일본을 통한 굴절어의 유입에다 사회문화적 시각인 젠더보다 생물학적인 섹스에 더 큰 비중을 둔 관습을 따른 결과였다.
기실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은 시가의 효시로서 고조선 시대 공무도하가가 그 첫페이지에 있지 않는가.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절규했던 여옥에 이어서 눈먼 아들을 위해 천수관음 앞에 비는 신라 경주 여인 희명도 떠오른다. 전주 장에 간 남편이 노름판이나 도둑, 주점의 유혹, 즉 진 데를 밟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정읍사’의 백제 여인, 고려가요 가시리와 사모곡도 모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어서 조선 시대에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등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여성 시인은 대부분 기녀라는 특수 계층이었다. 현실의 불행이 절실한 시적 에너지를 촉발함으로써 예술성 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계기로 여성의 글쓰기가 더욱 활발해졌음도 알 수 있다.
국학자 이능화 선생의 <조선해어화사>(1927)에 의하면 기녀는 원래 노래하는 사람과 춤추는 전문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기예와 가무를 익힌 여악(女樂)이 시초였다는 기록도 있다. 신라 시대 화랑의 시발이라 할 수 있는 원화(源花)에서 기인한 것(<삼국사기>)이라는 설도 있고 기학(妓學)은 의약술이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류계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유교 봉건 사회에서 남성들이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解語花)라 했던 여성들과 즐기며 풍류라는 이름으로 위엄을 떠는 사이 기녀들은 비하와 차별을 감수하며 시를 읊고 쓴 것이다.
드디어 개화기에 이르러 근대문학이 새로운 형태로 도입되고 신교육을 받은 여성 문인이 등장하지만 편견과 억압의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은 이 땅의 선구 여성으로 큰 꿈을 안고 떠난 일본 유학 중에 고향 선배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한 후 “정조를 잃은 헤픈 여자”로 지목되어 문단의 경멸과 따돌림 끝에 신주쿠 뒷골목에서 치약과 땅콩을 팔다 사라진다. 그리고 최초의 화가요, 문필가인 나혜석은 파리에서 만난 애국지사 최린과의 염문 때문에 이혼당하고 행려병자로 무연고 병실에서 발견된다. 이 땅의 여성 문학사는 이렇듯 비명과 피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여성 문학은 성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활발하고,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크게 호평을 받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음은 다 아는 바이다. 더구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고 특정 계층의 일로 치부하고 하시했던 예인들은 이제 가장 큰 선망과 함께 전세계를 헤엄치고 있다. 그럼에도 나라 안에서는 여전히 차별과 냉소의 시선이 여기저기 스며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언어 속에 내재되어 빈번하게 튀어나오는 편견과 은근한 조롱을 맞닥뜨릴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데이트 폭력, 성희롱, 성폭력, 불임 여성, 친자 확인, 미혼모, 혼외자, 워킹맘, 처녀성 등등의 언어들이 여전히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쥴리로 상징되는 한 여성에 대한 특수 신분 경력 논란, 국모, 꽃뱀 등의 부적절한 언어는 정말 섬뜩하다. 뒤주 안에서 죽은 남편 사도세자의 참변을 쓴 조선의 대표 문인, <한중록>의 저자 혜경궁 홍씨의 혜경궁도 이유를 떠나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괜히 좀 난감한 느낌이다. 자유부인, 복부인, 치맛바람, 아가씨, 아줌마까지 그동안 여성에 대한 냉소와 비하 언어는 수없이 많았다. 진정 평등한 존재로서 여성성에 대한 해방이 아직 언어학적으로 변화를 이루지 못했고 심지어 최근에 성추행 피해 호소인이라는 황당한 표현은 언어의 퇴행이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아직 도처에서 만나는 유리천장이요, 살얼음판이다. 이 혼란은 아직 덜 깨인 우리의 의식 속의 빙벽이 무너져가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세계로 나간 우리의 춤꾼, 소리꾼, 광대, 풍각쟁이, 배우, 환쟁이들의 빛나는 재능이 오늘 월드 뉴스를 뒤덮고 있다. 슬픈 시인들이 쓴 눈물 같은 시가 시간의 바위를 뚫고 살아남아 가을 끝자락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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