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믿지 않았다..시인 최승자의 허무

김유태 2021. 12. 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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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산문집 개정판
'한 게으른 시인의..'출간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 몇 세기 전의 겨울을'(최승자의 시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마지막 부분).

한 번이라도 시에 기댔던 청춘이라면 '시인 최승자'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인용한 시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를 비롯해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등의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자취를 감춘 시인 최승자. 1989년 그가 출간한 첫 산문집이 32년 만에 개정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난다 펴냄)로 몸을 바꿔 출간됐다. 산문집 첫 판본에 1995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을 추가한 책이다.

첫 장을 열면 한 시대를 거쳐간 최승자의 젊은 날이 초상처럼 우뚝하다. 허무의식이 첫 단추다.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22쪽) '미래는 언제나 무(無)였다. 있는 것은 언제나 밑도 끝도 없는 수렁 같은, 막막한 현재뿐이었다.'(54쪽)

엄혹했던 시절을 하나의 '가위눌림'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다시금 눈길을 끈다. 그는 사회사적인 차원보다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그 시대를 관통하려 했다. '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139~140쪽)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 독문과에서 수학한 그는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은 1981년 출간된 뒤 40년간 52쇄를 찍었을 만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번역가로도 오래 활동하던 최승자 시인이 언어의 옷을 갈아입힌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이그나치오 실로네, 빈센트 말레이, 앨프리드 앨버레즈, 이사벨 아옌데 등을 번역하던 그는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중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모습을 감췄다.

책을 편집한 김민정 난다 대표는 "2014년 산문집 재출간을 요청해 2019년 허락받았다"며 "개정판 교정지에 밑줄을 그으며, 왜 아주 오래전부터 이 시인의 절판된 산문집을 보물처럼 챙겨 이사를 다녔는지 새삼 느꼈다"고 소회했다. 최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도 이달 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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