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으면 눈앞도 캄캄

한겨레 2021. 12. 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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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하철을 거꾸로 타서 약속에 늦었다.

환승하기 복잡한 역이긴 했지만,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되는데도 이런 실수를 했다.

지하철 이동 경력만 수십년인 내가 이런 실수를 거듭하다니.

서울역에서 내려야 하는 내 눈앞에 '서울역' 세 글자가 커다랗게 보이는데도 내 텅 빈 눈에 글이 깃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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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삶의 창] 홍인혜 | 시인

최근 지하철을 거꾸로 타서 약속에 늦었다. 환승하기 복잡한 역이긴 했지만,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되는데도 이런 실수를 했다. 친구에게 ‘지하철을 잘못 타서 조금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데자뷔를 느꼈다. 얼마 전에도 같은 역에서 열차를 거꾸로 타서 비슷한 변명문을 보냈던 것이다. 지하철 이동 경력만 수십년인 내가 이런 실수를 거듭하다니.

그뿐이 아니었다. 근래 내려야 할 정거장을 스쳐 지나간 적도 두어번 있었다. 별수 없이 계단을 오르고, 역사를 가로질러, 반대편 승강장까지 꾸역꾸역 걸어가며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제대로 내렸으면 진작 집에 가서 온수 매트에 누웠을 시간이었다. 더한 일도 있다.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서서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지도 앱에서 5분 후에 온다던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게 아닌가. 앱을 살피니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다음 차를 타야 한다는 안내가 보였다. 도대체 버스가 언제 지나간 거지? 앱의 오류라 하기엔 정류장이 한산해진 것을 보니 실제로 버스가 지나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두 눈을 훤히 뜨고 타야 할 버스를 보내버렸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일이 반복되자 겁이 났다. 나의 뇌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왜 뻔히 있는 표지판을 허투루 보고, 내릴 정거장을 놓치고, 타야 할 버스까지 흘려보내는 것일까. 나는 성격이 꼼꼼한 축이라 살며 이런 실수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분명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두려움이 치밀어 언제부터 이런 일이 생겼고, 어떤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를 점검했다. 그러다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열심히 쓰기 시작한 이후 벌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기기 자체에 내장된 소음 조절기가 외부 소음을 줄여주는 음향기기다. 설명만 듣고는 고막을 파고드는 세상의 노이즈를 이 작은 기계가 막아주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어폰을 써보고 깜짝 놀랐다. 버튼 하나에 거리가 고요해지고 자동차가 숨을 멈추고 세상이 침묵했다. 텅 빈 방에 가수와 나만 있는 느낌, 진공 상태에 나와 악기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두툼한 커튼이 나의 외부에 둘러쳐지는 그 먹먹한 감각에 반해 외출할 때마다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특히 대중교통에선 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패딩점퍼의 부스럭거림, 지하철 선로의 툴툴거림이 순식간에 사위는 것을 느끼며 음악에 빠져들곤 했다. 문제는 그 집중도가 너무 과했던 것이다. 나는 눈을 훤히 뜨고도 눈앞의 모든 것을 놓치기 시작했다.

단지 귀가 막혔을 뿐인데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서울역에서 내려야 하는 내 눈앞에 ‘서울역’ 세 글자가 커다랗게 보이는데도 내 텅 빈 눈에 글이 깃들지 못했다. 타야 할 버스가 코앞에 멈춰 문을 활짝 열었는데도 나는 도로가 텅 빈 듯 착각했다. 이건 마치 인생에 대한 메타포 같았다. ‘귀를 막으면 눈앞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들어야 할 말에 귀를 막고 살아간다면 자기 안에 갇혀 앞뒤 분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 거라는 사인 같았다.

돌아보면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주관이 뚜렷해지고 타인의 말에 귀를 덜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줏대가 생긴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들으며, 나머지 모든 것을 소음으로 여기고 차단해버린다면, 시야까지 좁아질 수 있겠구나. 세상이 또렷이 보내주는 신호를 외면하고 거꾸로 갈 수도 있고, 기회의 문이 열려도 텅 빈 눈으로 떠나보낼 수 있겠구나. 결심하기 좋은 이 계절 나는 다짐해본다. 새해엔 좀 더 귀를 열고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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