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깎아".. 개편에도 말 많은 HUG 고분양가 심사제

고성민 기자 2021. 12. 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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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HUG) 고분양가 심사 제도가 개편된 이후에도 정비사업지의 불만은 꺼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HUG가 분양보증을 무기로 악용해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이 문제라며 분양보증을 HUG가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가 2019년 8월 12일 재건축을 위해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 기준 개편 3개월… 들쭉날쭉 심사에 불만 증폭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부산 양정1구역 재개발조합은 지난 6일 HUG로부터 3.3㎡(1평)당 1581만원의 분양가를 통보받았다. ‘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34평형) 기준으로 약 5억3754만원 수준이다. 조합원들은 인근 양정2구역(양정포레힐즈스위첸·2023년 입주) 전용 84㎡ 분양권이 올해 초 8억8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분양가가 지나치게 낮다고 반발하고 있다. 분양 일정을 연기하더라도 분양가 재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합은 3.3㎡당 2000만원(84㎡ 6억8000만원)의 분양가를 HUG에 신청했다.

대전에서는 용문 1·2·3구역이 최근 HUG로부터 3.3㎡당 1677만원의 분양가를 통보받았다. 조합은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편 이전인 지난 9월 분양가 심사를 추진하며 분양가 상한액을 3.3㎡당 1900만원대로 신청했다. HUG와 조합은 당시 1750만원 수준에서 분양 보증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제도 개편 이후 되려 분양가가 낮아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분양가 심사 제도 개편 이후 수혜를 본 사업지도 여럿 있다. 바뀐 제도에 따라 3.3㎡당 수백만원씩 분양가를 높이는 데 성공한 사례다. 서울 미아3구역은 3.3㎡당 2380만원에서 2932만원으로, 부산 온천4구역은 3.3㎡당 1628만원에서 1959만원으로, 인천 부평4구역은 3.3㎡당 1500만원에서 1925만원으로 각각 분양가가 높아졌다. 분양가 낮은 정비사업지에서 “왜 우리만 분양가를 깎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지는 이유다.

◇보증 리스크 관리한다며 사실상 분양가 통제… 독점 깨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심사기준이 들쭉날쭉한 문제에 앞서 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증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분양가를 통제한다는 지적에서다.

주택법에 따르면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선분양을 할 때 사업 주체는 반드시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부도로 분양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사례에 대비한다는 목적에서다. 보증사고가 나면 보증기관은 해당 주택을 직접 분양하거나 건설사 대신 계약자에게 계약금·중도금을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재 국내 분양보증 발급 기관은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HUG밖에 없다. 정부가 분양가 통제 수단으로 분양보증을 무기로 쓴다는 원성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서 자자하게 나오는 이유다. 입맛에 안 맞는 분양가를 내세우는 사업지의 보증을 거절하면 일반분양 시기가 차일피일 밀리고, 조합은 울며 겨자 먹기로 HUG의 분양가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국토부는 앞선 지난 9월 분양가가 과도하게 낮게 산정되고 있다는 건설 업계 반발을 수용해 고분양가 심사 규정을 일부 개편했다. 분양가 산정 시 단지 규모나 브랜드 등이 유사한 인근 사업장을 선별해 시세를 반영하겠다고 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기존엔 인근 지역 모든 사업장의 평균 시세를 반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HUG의 분양보증 독점을 깨뜨려 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월권행위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017년 이미 HUG의 보증 독점을 ‘경쟁 제한적 규제’로 지목하고 2020년 말까지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작년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현재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분양보증은 HUG 외에도 국토부장관이 지정하는 보험회사에서 할 수 있도록 법(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으로 규정하고 있어, 국토부장관이 보험회사를 지정하면 경쟁체제 도입이 가능하다.

김민형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겸임교수는 “HUG가 보증 리스크 관리 목적보다 정부 정책에 맞추기 위해 분양가를 낮춰온 것이 현실”이라면서 “일부 수분양자들은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분양받은 사람과 분양받지 못한 사람의 격차를 키우고 분양을 ‘로또’처럼 만들어 과도하게 시장을 왜곡했다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상적인 시장으로 되돌리려면 HUG의 독점적 기능을 막음으로써 시장 왜곡을 막고, 시장 기능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HUG가 분양보증을 독점할 때 분양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그간 분양보증 민간 개방을 안 해온 것”이라면서 “이미 했어야 하는데 국토부가 안 하고 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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