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중국의 장성과 고대사 왜곡

기자 2021. 12. 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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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장성은 전국시대 연(燕)나라(서기전 1046∼222년) 장성과 이후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서기전 221∼206년) 장성 두 개가 있다.

진나라 장성은 지금의 만리장성으로, 전국시대 때 연·조 등이 북쪽 국경에 쌓았던 성들을 보수해 연결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수년 전부터 국정 교과서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장성이 한반도 서북쪽에 있었다고 가르친다니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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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고대 중국의 장성은 전국시대 연(燕)나라(서기전 1046∼222년) 장성과 이후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서기전 221∼206년) 장성 두 개가 있다. 진나라 장성은 지금의 만리장성으로, 전국시대 때 연·조 등이 북쪽 국경에 쌓았던 성들을 보수해 연결한 것이다. 그래서 두 장성의 동쪽 끝은 같다는 게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의 분석이다. 지금의 허베이(河北) 내 베이징(北京)·톈진(天津)에서 동쪽 바닷가 쪽으로 갈석산이란 곳이다. 현재 만리장성은 갈석산에서 약간 더 동쪽인 중국의 유서 깊은 관문인 산해관까지 이어져 있다.

역작 ‘고조선 연구’에서 ‘대(大)고조선’을 제시한 윤 교수는 연·진 장성은 당시 고조선의 서쪽 강역과 직결한다고 했다. 재야 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갈석산은 현지에선 진시황부터 당나라 태종까지 9명의 황제가 올랐다는 뜻의 ‘9등 황제산’으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자신들의 제국 동쪽 끝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윤 교수와 이 소장은 서기전 12세기 무렵의 기자조선과 기자조선을 정복한 위만조선, 그 후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치고 설치했던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도 이 부근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 관련 부분은 논란이 있다. 오래전 일을 입증할 사료가 없으니 그렇다. 그러나 중국이 수년 전부터 국정 교과서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장성이 한반도 서북쪽에 있었다고 가르친다니 어이가 없다. 장성의 동쪽 끝이 압록강·청천강이었다는 고대사 왜곡이다. 수 양제가 쳐들어왔다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대패해 결국 패망했는데도 고구려를 정벌했다고 거꾸로 쓰는 등 왜곡 사례가 수두룩하다. 바로 중국 정부의 역사 왜곡인 ‘동북공정’의 결과다. 이는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 자료로 또 확인됐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일제 식민사학과 궤를 같이한다. 조선총독부 시절 식민사학을 대표하는 한 일본인 학자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황해도 수안군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수안의 방원진 석성 유적이 만리장성 유적이라는 억지다. 더 놀라운 것은 국내 고대 사학계다. 식민사학이 실증사학이라며 비슷한 주장을 따라 한다. 그러니 동북공정을 반박하지도 못한다. 통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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