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문장이 아니라 문단 단위로 쓴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2021. 12. 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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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서울대 문리대 4.19 선언문 재구성으로 익히는 '단락 단위 서술'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와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아래 글은 명문으로 평가받아온 서울대 문리대의 4.19 선언문 중 일부다. 이 제시문이 원문과 다른 점이 있다. 원문의 문단을 해체했다는 것이다.독자는 이 제시문을 읽으면서 스스로 문단을 구성해야 한다.

문단 단위로 쓰인 글을 읽을 때에 비해 추가 정보처리를 병렬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해체된 이 제시문은 글을 문단 단위로 써야 함을 반면교사로 보여준다.

글을 쓰는 기본 단위는 문단이다.

이 기본이 국내에서는 간과된다. 활자매체조차 문단을 경시한다. 활자매체의 칼럼이나 수필을 보면 병합되거나 분할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락이 간혹 눈에 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문단을 구성하지 않고 문장을 낱개로 열거해놓은 글이 자주 보인다. 심지어 문단을 해체한 그런 유형의 글을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인다는 글쓰기 책도 나왔다.

“문단에서 글의 일관성이 시작된다”
재차 강조한다. 글은 단락 단위로 써야 한다고. 이는 내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다. 근거와 사례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지면 제약상 하나만 제시하면, 스티븐 킹의 조언이다. 영화 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세계적인 작가 킹이 말했다.

“문장이 아니라 단락이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고.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그는 문단을 “일관성이 시작되고 단어들이 단순한 단어들 이상이 될 가능성을 얻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문단을 묶고 전개하는 방법은 ‘한 단락에 한 가지씩’이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장들을 모아서 한 단락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문단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야 한다.
많이 쓰이는 문단 구성법이 두괄식이다. 당연히 킹도 두괄식을 강조했다. 킹은 두괄식을 ‘주제 문장 다음에 뒷받침하거나 묘사하는 문장을 배치하는 방식’이라고 풀어서 설명했다.

서울대 문리대의 4.19 선언문은 명문이다. 그러나 원문의 문단을 재구성하는 대안이 있다. 오른쪽 페이지의 상자에 원문의 앞부분과 단락을 재구성한 대안을 각각 좌우로 배치했다.

원문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재배치됐는지 비교하기 쉽도록 색으로 표시하고 굵은 글자로 처리하고 밑줄을 그었다.

비슷한 문장 모으고 재배치하자
대안은 왜 원문의 밑줄친 문장들을 한데 모았나? 밑줄 문장들은 자유를 압살한 독재정권의 작태를 비판한다. 그 작태를 원문은 세 단락에 걸쳐 전개했다.

그런데 시작하는 문장인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으로 발 벗었다’가 붉은색으로 표시된 문장들 다음에 배치됐다. 붉은색 문장들은 자유의 전선을 서술하는 내용이다. 한 단락에 결이 다른 문장들이 접합된 것이다. 오른쪽에 정리된 두 문단이 단락 단위 서술 지침에 충실하다.

원문과 대안을 비교하는 둘째 포인트는 두괄식이다. 대안의 ‘우리의 지성은 이 거리의 암담한 현상이 자유를 위장한 전제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문장과 그 다음 문장으로 구성한 단락의 위치를 생각해보자. 이 단락은 다음 두 문단을 아우르는 내용이고, 그래서 대안에서는 독재정권의 작태를 비판한 두 단락의 위에 놓였다.

대안과 원문을 비교해보자. 원문은 대안의 두괄식 단락에 묶인 두 문장을 멀찍이 떼어놓았다. 뿐만 아니다. 원문은 붉은색 문장들을 중간에 배치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할 단락들을 차단했다.
보라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셋째 비교 포인트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당위성을 서술한 문장들이 원문에는 흩어져 있다. 대안은 이를 한 단락에 모으며 순서를 재배치했다.

이 밖에 원문과 대안은 단락의 전개에서도 차이가 크다. 대안의 전개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전선 확장- 자유를 압살한 독재정권의 작태- 민주주의와 자유의 당위-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의 행동과 선언’의 순서를 따랐다. 글의 전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상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스티븐 킹은 글을 문단 단위로 쓰라고 조언하면서 “글은 정제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글로 풀어낸 생각이 정제되었는지 점검할 중요한 측면이 단락이다. 단락 구성은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글을 준비하는 단계는 물론 퇴고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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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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