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쌍둥이 만들어 지구를 구하라

이태동 기자 2021. 12. 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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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주목받는 '디지털 트윈' 기술

‘지구를 컴퓨터에 그대로 복사한다. 가상 지구를 통해 미래를 엿보고 인류에게 일어날 갖가지 기후 재난을 수년 앞서 파악한다. 대책을 세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의 지구에 적용한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미래에 갔다 온 듯한 이점을 누린다.’

공상과학(SF) 영화 줄거리 같지만,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는 기술로 지구를 디지털화(化)한 세상이라면 가능한 얘기다.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각종 변수와 내·외 조건까지 그대로 가상 세계에 복사해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다. 이미 제조업, 도시 교통 시설, 건설·토목업 등에 도입돼 활용되고 있다. 물류망이나 생산 네트워크를 점검할 때도 쓰인다.

이 기술을 지구 행성 단위까지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다. 지구의 가상 쌍둥이(digital twin of earth)를 만들어 인류를 괴롭히는 자연재해나 기후 재앙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아이디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지구에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기후 재난이 7348차례 발생해 42억명이 피해를 보았고 123만명이 숨졌다. 경제적 피해액은 2조9700만달러(약 2400조원)에 달했다. 디지털 트윈 지구가 등장한다면 이런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게 꿈이 아닐 수 있다. 디지털 트윈 지구를 두고 ‘기후 위기와 맞서 싸운다’ ‘세상을 구하려는 노력’ 같은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구름 움직임도 파악, 기후 변화 예측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이는 건 반도체·컴퓨터 제조 기업 엔비디아다. 젠슨 황 CEO는 지난달 자사 테크놀로지 콘퍼런스에서 “어스2(Earth-2)라는 이름의 수퍼컴퓨터를 개발해 메타버스 플랫폼 옴니버스에 디지털 트윈 지구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10년, 20년, 30년 뒤 지구 기후를 시뮬레이션해 변화를 예측하고 더 늦기 전에 위기를 완화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 디지털 트윈 지구 개념도

디지털 트윈 지구의 성공을 이끌 핵심 요소로는 ‘해상도’와 ‘처리 속도’가 꼽힌다. 현재는 10~100km 단위에 불과해 부정확하고, 이보다 복잡한 방정식을 계산하는 게 불가능하다. 황 CEO는 “장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선 대기, 바다, 육지, 빙하, 인간 활동과 모든 물리적 상호 작용을 모델링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태양 복사열을 우주로 반사하는 구름의 움직임 등을 계산하려면 해상도가 ‘수미터’ 단위로 줄어야 한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자사의 신형 AI 머신 러닝 프로그램(모듈러스)을 활용하면 현재보다 계산 속도를 최대 100만배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모델링 예상 발전 단계를 보면, 2020년대 초반 대기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단계(해상도 처리 속도 1분에 1km)에 진입했고, 2030년대 중반 폭풍 관찰 단계(1초에 100m)를 거쳐 2060년 구름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0.01초에 1m)로 진화한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 인터넷판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해상도 1km 단위로 일부 지역의 폭풍과 대기 소용돌이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단기 강우량 예측 향상 효과를 얻은 바 있다. 황 CEO 말대로 수미터 단위로 해상도가 높아진다면 아주 좁은 지역의 산불, 홍수를 미리 알고 피하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

다만 엔비디아가 아직 어스2를 가동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테크 애널리스트 애디슨 스넬은 트위터에 “엔비디아의 발표는 그저 미래 상황을 내다본 데 불과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남극·바다·숲은 이미 디지털 트윈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올 1월 유럽에서 발진한 ‘데스티네이션 어스(Destination Earth)’ 프로젝트가 먼저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 주도로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유럽우주국(ESA), 유럽기상위성탐사기구(EOEMS) 등이 총출동한 디지털 트윈 지구 개발 계획이다. ECMWF 피터 바우어 연구부국장은 “강수량이나 온도 예측뿐 아니라 농업 활동, 물 가용성과 기반 시설 등 인간 시스템까지 결합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악화 시나리오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탄소 제로(0) 사회 전환의 핵심 사업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엔비디아가 하드웨어(수퍼컴퓨터) 개발에 힘쓰는 것과 달리 유럽의 데스티네이션 어스 프로젝트는 소프트웨어 기술 진보에 중점을 두는 점이 특징이다. 지구의 전 측면을 담는 균일한 시뮬레이션 모델이 아니라, 사용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데이터를 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플랫폼을 지향한다. 바우어 부국장은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 높이 2m짜리 제방을 지을 계획이라면 2050년에도 제방이 안전할지 디지털 트윈 지구로 따져보고 건설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유럽의 디지털 트윈 지구 모델은 고급 지식이 없는 일반 사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ESA는 이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분야별 선도 연구를 진행 중이다. 남극은 빙하와 해양, 대기, 생태계, 수문학(水文學)을 결합해 구축한 디지털 트윈 남극(Antarctica)이 만들어져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연구진은 가상의 남극을 통해 빙하가 녹는 위치를 추적하고 다양한 수문학적 시나리오에 따라 빙붕이 녹는 정도와 해수면 상승 가능성 등을 연구 중이다. 프랑스 국립해양과학연구소는 디지털 트윈 오션(Ocean)에서 과거 학습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해양 사건을 예측하는 AI 기술을 연구 중이다. 농업 활동이 일으키는 상호작용과 작물과 강수량 관계를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 푸드 시스템(food system), 산림의 성장도가 탄소 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디지털 트윈 포리스트(forest)도 구축돼 있다. 이런 분야별 연구를 차차 결합해 지구 일부분을 담은 디지털 트윈을 2023년까지 두 개, 2025년까지 다섯 개 만든 후 2030년 완전체로 통합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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