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경세제민]경제위기 극복하려면 규제개혁 나서야

신하영 2021. 12.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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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전 고려대 총장]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3.7% 올라 201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석유류, 식품, 주거비 등 생활물가가 급등세다. 물가상승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활성화 해 국민소득과 소비수요가 함께 증가할 때 나타난다. 이 경우 물가가 올라도 국민소득이 증가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성장률 하락과 경기침체로 인해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분기 우리국민이 실질적으로 번 돈인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0.7% 감소해 지난해 2분기 이후 최저다. 소득이 감소하는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국민의 삶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업과 폐업이 빈번하고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득하락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 경제적 고통이 크다.

물가상승은 일차적으로 경제에 돈이 많이 풀릴 때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을 대신해 ‘경제 살리기’ 정책을 기본기조로 삼아 과거 어느 정부 때 보다 많은 예산을 편성해 돈을 풀었다. 지난 해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해 경제가 타격을 받자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재정규모를 더 확대했다. 내년 예산도 607조7000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604조4000억원보다 3조3000억원을 늘려 승인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성이 강한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인 0.5%까지 낮추고 무제한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렸다.

재정과 통화 팽창이 코로나 위기 극복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규모 자금이 부동산과 증권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 투기를 가열하고 동시에 물가를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실로 큰 문제는 유가상승이다. 지난달 석유류의 가격지수가 35.5%나 상승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등 주요 원자재의 공급이 차질을 빚어 물가가 급등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 양면에서 물가상승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겪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이 경우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금의 긴축정책을 펴면 물가불안은 여전하고 경기침체만 악화한다. 반대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자금의 팽창정책을 펴면 경기침체는 여전하고 물가만 더 오른다. 1970년대 갑자기 나타난 중동의 석유파동이 세계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밀어 넣어 사상 최악의 물가고와 실업난을 겪은 바 있다. 이번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도 유사한 성격을 띤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고 있다. 백신 보급으로 진정세를 보이던 경제 불안이 되살아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거품이 꺼질 경우 경제는 수습이 어려운 부도와 실업 대란에 휩싸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이 경제 이기주의를 강화해 원자재 공급망이 붕괴위험을 맞고 있다. 원자재 공급망 붕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차원을 떠나 산업현장에서 생산과 공급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최근 우리경제는 요소수 대란을 겪으며 자칫하면 화물운송이 중단되는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다행히 당분간 중국으로부터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해 급한 불은 껐으나 언제 다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요소수 대란은 중국의 호주산 석탄의 금지에서 비롯되었다. 호주가 코로나에 대한 중국의 책임론을 제기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고 석탄 공급이 부족하자 석탄을 원료로 하는 요소수 생산이 줄어 대란이 일어났다. 향후 유사한 현상이 속출하면서 원자재 공급망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국발 공급망 붕괴는 우리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철강 등 주요산업에서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인 탓이다. 우리경제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필수 원료인 희토류의 중국의존도는 90% 이상이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의 시장 지배를 위해 세계 최대 회사를 설립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지나치게 안일하다. 경제가 불안하니까 돈줄을 조이는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의 증가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올리고 11월 다시 1.0%로 올렸다. 내년에는 더 올릴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도 긴축정책기조로 돌아서 대출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금융긴축정책은 돈줄만 조이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단순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불안을 겪는 상황에서 금융긴축만 하면 물가도 잡지 못하고 경제만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금리상승과 신용경색으로 가계부채의 부도위험도 커진다. 더구나 공급망 붕괴를 방치하면 아예 산업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석유와 원자재의 공급과 가격 안정을 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주요 원자재의 자급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의 물가관리 체제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규제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서 경제를 혁신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중자금이 물가와 투기 대신 기업투자와 산업발전으로 흐르게 해 경제가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1980년대 미국은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펴 작은 정부를 만들고 시장기능을 살려 스태그플레이션을 해소했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일으키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소득주도성장에 치중해 거꾸로 경제 불안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정부는 코로나 위기에 대해 실효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정치적인 선심성 정책을 지양하고 경제적 고통을 겪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효율화하고 경제의 저변인 자영업과 중소기업 등을 올바르게 살리는 생산적 정책을 펴야 한다. 경제가 새로운 산업발전 체제를 갖추고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는 규제개혁과 경제혁신의 청사진을 한시바삐 내놓고 미래 첨단산업 발전을 서둘러야 한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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