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부회장 전성시대

윤영신 논설위원 2021. 12. 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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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전성기 시절 삼성의 ‘1.5인자’로 불렸다. 오너 회장 밑의 ‘넘버 2′지만, 단순한 2인자를 넘는 준(準)오너급이란 뜻이었다. 그는 공개 활동을 꺼리는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분신처럼 활동하면서 10여 년간 그룹 업무를 총괄했다. 그가 초안으로 작성한 수십 개 계열사 사장 인사안을 이 회장이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결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재계 역사상 최고의 ‘실세 부회장’이었다.

▶모든 2인자가 그렇듯 재벌 부회장은 고도의 정무적 능력이 필요한 자리다. 경영 실력은 기본이고 너무 ‘오버’하지 않는 기민한 처세술, 오너가 눈만 깜빡여도 알아챌 정도의 충성심 등이 종합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오너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면 ‘실세형 부회장’으로 승승장구한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복심 이인원 부회장은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형제의 난’이 벌어졌을 때 판도를 좌우한 실력자였다. 그러나 대부분 사장급은 여기에 못 미친 채 사장 타이틀로 옷을 벗는다. “고생했다”는 배려 차원에서 퇴임 직전 예우로 부회장 직함만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삼성의 최지성·권오현·김기남 부회장 등도 실세형이었다. 이들 중 권오현·김기남은 회장직까지 올랐다. 최근 10여 년 사이 주요 그룹에서 샐러리맨 출신이 회장까지 오른 사례는 이 둘뿐이라고 한다. 둘 다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삼성전자를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압도적 1위로 만든 ‘전설적’ 성과에 대한 예우였다. 미래에셋 그룹의 최현만 회장도 15년간 부회장을 지내다 이번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이라도 다 동급은 아니다. ‘회장급 부회장’도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이건희 회장이 오래 병석에 있었던 데다 본인은 지금도 재판을 받는 중이라 10년째 부회장에 머물러 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도 부회장 타이틀을 뗀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작년 10월 정몽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그제야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도 어머니 이명희 회장 아래서 16년째 부회장을 하고 있다.

▶올 연말 재계에 부회장 승진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그룹은 3명이나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중 정현호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 아래의 2인자로 인사·재무·사업전략을 맡게 됐다. SK·LG·롯데·현대중공업그룹도 부회장을 1~4명씩 임명했다. 유례없는 부회장 풍년이다. 총수 혼자 관리할 수 없을 만큼 대기업들의 사업 영역이 넓어져 각 부문을 맡은 CEO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4차 산업 격변기에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끌 스타 경영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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