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격랑의 시대 뒤에서
[경향신문]
팝 음악계는 변혁의 격랑 위에 있다.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면서 스포티파이,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 담당자는 과거 디제이와 저널리스트의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성 배려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BTS를 비롯한 K팝 스타들의 승승장구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격변의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음악성과 상업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 음악’의 탄생 또한 기술 및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이 레코딩 기술을 발명하면서, 음악에는 악보와 공연뿐만 아니라 음반이라는 세계가 주어졌다. 음반은 악보를 읽기 위한 지식, 공연을 보기 위한 시공간적 제한으로부터 청자를 해방시켰다. 무한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언제 어디서나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스타가 탄생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
하지만 많은 대중음악사 관련 서적이 이를 간과해 왔다. 역대 명반, 명곡, 그리고 뮤지션을 다루는 많은 책들은 음악적 시도와 의의, 혹은 차트에서의 기록에만 포커스를 뒀다. 왜 그 음악이 나왔는지, 무엇이 뮤지션에게 그런 고민을 안겨줬을지를 짚어주지 않았다. <록 크로니클: 현대사를 관통한 로큰롤 이야기>(히로타 간지 지음)는 현대사의 관점에서 음악의 역사를 짚는 책이다
책은 1952년, 미국의 레드퍼지 운동으로 시작한다. 공산주의자를 공직에서 추방하는 운동이다. 매카시즘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로도 퍼졌고 포크에 대한 탄압으로도 이어졌다. 피트 시거 같은 행동주의자들이 배제 대상이 됐다. 새로운 댄스 음악이자 육체의 음악으로 여겨져 백인 청년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한 R&B는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르러 주류 청년 문화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저속한 흑인 문화가 고결한 백인 문화를 훼손한다 여겼다. 포크와 록 같은 당대의 트렌드는 세대와 이데올로기의 기준점으로 작용했다. 이는 2차대전 이후 발아한 공민권운동과도 연관됐다. 흑인 스타들은 마틴 루서 킹이 주도한 공민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들을 통해 유색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알게 된 백인 청년들도 가담했다. 마틴 루서 킹의 명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가 발표된 1963년 8월28일 워싱턴 대행진. 행사의 대미를 피터 폴 앤드 메리가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로 장식하는 대목은 혼란의 시대에 음악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밥 딜런이 왜 음유 시인이라 불리는지, 비틀스가 당대에 던진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시대 안에서 설명한다.
히피즘이 태동하고 지배했던 1960년대와 70년대 또한 사실과 맥락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화합물질, 즉 마약도 늘어났다. 초기에는 합법적으로 사용되던 LSD의 등장으로 이성과 인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사이키델릭을 탄생시켰고 히피 무브먼트의 일부가 됐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음악적 사건으로 구성한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을 생각하게 된다. 비로소 이해된다. 2019년 왜 영국의 ‘타임스’가 BTS와 비틀스를 비교했는지. ‘변방’이었던 영국에서 시작된 비틀스 신드롬이 미국을 급습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의 역사를 바꾼 일련의 과정과 BTS의 유사성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가치다. <록 크로니클>은 그런 통찰과 새로운 고민을 던진다. 스포츠 시합을 중계하듯 빌보드와 그래미를 이야기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음악을 다루는 이들이 읽어야 할 것을 <록 크로니클>은 제시한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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