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찬 공기
[경향신문]
일명 산사람.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산을 탄다’ 하여 산타, 원조 산타.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붉은 낙엽이 물들 때 산타 할아범처럼 옷을 차려입은 산. 아직 매운 추위와 눈보라가 없어 바삭바삭 낙엽이 밟혀. 옛날 땔감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다닌 기억도 있다. 그러다가 연탄을 때기 시작했는데, 연탄을 들인 광에다 새끼를 낳은 흰둥이가 ‘시커먼스’ 검댕이 차림. 강아지 한 마리는 검정 점박이. 그놈 이름을 ‘연탄’이라고 지었던 기억. 가끔 동네에 연탄가스로 누가 죽기도 하고 그랬다. 빈집에 남은 연탄은 푸석푸석 부서지고, 다음엔 지붕이 내려앉고, 사람 따라 집도 같이 최후를 맞았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은 촌 동네. 기름보일러 시설로 살고 있는데, 농협주유소 차량을 불러 기름통에 콸콸 채웠는데도 금세 밑바닥. 태양열 전기시설을 고민하고 있는데, 초기 목돈이 필요하대. 그냥 이대로 살자니 주름살만 늘어간다.
벌이가 시원찮아 뭐든 아끼게 되는데, 원 없이 따끈따끈 살아보고 싶은 게 소원. 그러다가 얼마 전 누구 아파트에 하룻밤 묵었다. 공기가 너무 덥고 답답해 잠을 설치다가 꼭두새벽에 장거리 운전으로 집에 돌아왔다. 찬 공기를 마시면 가슴이 뻥 뚫리고 살아 있는 것 같아.
알퐁스 도데의 별이 뜨고, 서산마루로 별똥이 떨어지기도 해. 첫눈이 내린 날 눈밭에 펭귄처럼 앉아 있던 배추들이 모두 사라짐. 아하, 김장독에서 겨울잠을 자겠구나. 별들이 지고 배추도 없는 하늘땅엔 찬 공기가 가득 찼다. 여기에 은목서 꽃향기가 한창인데 누가 이 세상에다 고급 향수를 이다지 많이 뿌리는 걸까. 코를 킁킁.
겨울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찬 공기. 콧김과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인다. 만지면 따뜻해지는 둘의 손. 이 추운 날들을 같이 이겨내자고 속삭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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