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실수해도 괜찮아, 지금으로 충분해
음악인에게 연습과 연구를 위한 고립은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비로소 ‘나만의 나’가 된다는 뜻이며, 나를 채워 넣을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기도 하다. 온종일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날을 아끼고 사랑한다. 해야 할 일에 허덕이는 나날 사이의 단비 같다.
조금 꼼지락거리다 게으름 부리며 늦게 일어나 보고, 커피도 좀 더 천천히 내린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긴 스트레칭을 하거나, 제법 추워진 날씨지만 강아지에게 귀여운 패딩 옷을 입혀 산책도 나간다. 미뤄뒀던 어려운 곡 연습을 영차 영차 채워 넣고, 손가락을 비롯한 몸의 기본 테크닉이 녹슬지 않도록 기초 트레이닝도 집중해 길게 실행한다. 그러고 나면 어쩐지 자존감이 차올라 저절로 고개가 들리고 콧노래가 나온다. 이런 날은 보통 오후에 집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일도 하고, 꽃집에서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사거나 집 안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등 주변을 가꾸려 노력하게 된다. 방해받지 않는 고독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올해만 수차례 자가 격리를 겪으면서도 그 시간이 답답하기보다 평안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그런데 아마 고독과 고립은 조금 다른 감정인가 보다. 최근 몇 주간은 뜻 모를 고립감에 불안해지고,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공연 일정도 많이 정상화돼 더 자주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게 됐고, 학생들도 직접 만나 수업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마음이 약해지고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 외로운 걸까. 어쩌면 내게만 ‘코로나 블루’가 뒤늦게 찾아온 걸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요즘 많은 것이 ‘정상화’되고 있다. 이런 때일 수록 활기차야 하는데, 생기를 품어야 하는데…. 마치 사슬에 묶인 것 같을 때도 있다. ‘지금, 더 본격적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보자. 이제는 잘해야 한다. 지금이야, 바로 지금.’ 이런 생각과 말이 아무래도 독이 되는 것 같았다. 시작했으면 책임져야 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다. 거기에 ‘더 잘하라’는 말이, 이미 물로 꽉 찬 컵에 물을 더 부어 넘치게 하듯 역효과를 내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굳이 잘할 필요 없어. 지금으로 충분해. 실수해도 괜찮아.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어.’ 그러다 보면 슬그머니 마음이 풀어진다. 오늘을 살아갈 힘과 차분한 집중력이 솟아오른다. 어쩌면 나를 위해 조건 없는 애정을 발휘하는 것은,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엄마보다 내가 먼저 자신에게 해줘야 하는 일이다. 잘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좋아해 주는 것은 참 어렵다.
‘정상화’의 부담감은 관계에도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다. 모두가 예기치 못한 자택 감금 상태였을 때는 참 많은 대화가 쉽게 오갔다. 전화나 줌 등을 통해서였지만 서로에게 집중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다른 의도나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것이 얼마 만이었나. 지나간 사람이나 어제 오늘 일어난 ‘일’에 멈췄던 대화가 각자의 취향과 생각, 신념 등으로 넓혀질 때 오히려 밝은 빛과 색을 냈다. 통제 불가능한 희한한 사태를 함께 겪고 있다는 동질감이 마음을 열어, 더 깊게 자주 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다시 열려 ‘정상’이 돼가는 지금은 누구와 얼마나 자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를 이루는 관계들은 그때와 지금 중 언제 더 견고했을까. 그저 삶 자체에 대해 숙고하고 대화하는 것이 어느새 예전처럼 쓸모없는 시간 낭비로 치부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정상’이 자신을, 또 관계를 다시 예전의 틀 안에 가두지 않도록 더 세심히 마음을 써야 할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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