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지 마세요, 오늘은 당신이 배우입니다
관객에게 즉흥으로 배역 지정, 매일 6~7명 배우로 깜짝 데뷔
놀라지 마시라.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연출 문새미)에서는 날마다 관객 예닐곱 명이 배우로 데뷔(?)한다. 얼결에 배역을 맡아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당신도 별안간 지목될 수 있다.
무대는 동서남북이 다 뚫려 있다. 객석에 포위된 셈이다. 주인공 ‘나’는 엄마가 자해를 시도한 어린 시절부터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풍선, 계절이 바뀌는 냄새, “괜찮아” 등 소확행 목록이다. ‘나’는 그것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읽어준다. 성장하면서 그 리스트는 불어나고 잊히고 재발견되기를 거듭한다. 몇몇 관객은 ‘수의사’ ‘아빠’ ‘양말 인형’ ‘문학 교수’ ‘그녀’ 등으로 이 1인극의 조력자가 되는데 누구도 저항하거나 거북해하지 않는다. 참여하는 즐거움부터 ‘나’를 응원하는 마음, 어떤 소속감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빛나는 것의 목록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고백한다. 엄마처럼 살까 봐 두려웠다고. 삶을 놓아버릴까 봐 두려웠다고. 한 관객은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그에게 “행복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답했다. ‘나’가 부탁해 ‘그녀’가 된 여성 관객이나 즉석에서 결혼식 축사를 해야 하는 ‘아빠’는 이 연극에 출연한 것일까 아닐까. 예측을 불허하는 삶처럼 그 경계 없음이 아슬아슬한 긴장과 재미를 준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보면서 저마다 생각하게 된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게 된다. 이 작은 모노드라마가 안겨준 선물이다. 성장하면서 수천 개로 불어난 리스트가 결국 ‘나’를 말해준다. 이 겨울에 내면을 마주하게 하는 따스한 난로 같은 연극이다. 1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백석광·정새별·이형훈이 ‘나’를 번갈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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