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다시 좋은 건축이란

조진만 건축가 2021. 12. 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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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느덧 연말과 함께 지난 삼 년간 이어온 ‘도발하는 건축’의 마지막 글이 되었습니다.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형태가 매력적이다’ ‘쓰인 재료가 예쁘다’라고 말합니다. 건축에서는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표현적인 측면이 우선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축을 단순히 미적 표현으로 치부하기에는 더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조진만 건축가

좋은 건축을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은 합목적성입니다. 건축이 그 쓰임을 위한 목적에 충실한지 여부입니다. 다음은 시대성입니다. 우리가 유적의 발견을 통해 과거 생활과 그 사회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담고자 하는 관계성입니다.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입니다. 그 건축이 마주하는 장소와 사회, 자연과 인간, 안과 밖 등 다채로운 관계성의 조직을 통해 우리 문화와 인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예로 학교를 떠올려 봅시다. 긴 복도에 교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번에는 관공서를 떠올려 봅시다. 황량한 마당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크고 엄숙한 로비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아파트입니다. 폐쇄적인 복도에 같은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학교는 교실 단위로 아이들은 분리되어 있고,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수업하는 공간이 됩니다. 관공서는 그 엄숙함에 볼일이 끝나면 가급적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됩니다. 아파트는 이웃끼리 소통하지 않고 층간소음으로 원한 관계가 생겨나기도 하는 삭막한 공간이 됩니다. 이런 일상의 공간들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관계성을 형성합니다.

훌륭한 건축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면의 미학적 가치뿐 아니라 그 이면에 사람들이 만나는 방식에 대한 틀을 새로이 제시합니다. 건축을 통해 좀 더 새로운 관계와 가치가 생겨나고, 일상의 무대가 되는 공간들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조하자면 건축은 결국 관계성의 학문입니다. 그것이 가진 힘은 실로 막강합니다.

좋은 건축과 도시는 분명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보다 창의적이고 개방되게 합니다. 편리함과 익숙함을 대가로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린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건축, 그 장소와 그 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건축,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이면에 있는 건축의 ‘의지’입니다. 예술과 건축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전자의 핵심이 ‘대상의 표현’이라면 후자의 핵심은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은 결코 하나의 답안이 아닙니다. 건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하며 미래 사회와 환경에 대한 무궁무진한 변화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발하는 건축, 그것은 창의적으로 도전하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통해 우리 삶을 진일보하기 위한 모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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