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김기동 2021. 12. 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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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90, 찍을 후보 못 정해
李·尹 비호감도 60% '역대급'
정책·비전 없고 표퓰리즘 난무
'차선' 대신 '차악' 뽑아야 할지도

한마디로 ‘대략난감’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9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뜻 찍을 후보가 없다. 정책·비전을 놓고 후보 간 ‘박빙’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반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비호감도는 60% 안팎을 오르내린다. 두 후보뿐만 아니라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비호감도는 70%에 육박한다. ‘정권심판론’이 ‘국정안정론’보다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부동층은 20∼30%에 이른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다 ‘형수 욕설’ ‘조카 살인 변호’ 등 곳곳이 암초투성이다. 대장동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꼬리자르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데도 특검 도입은 지지부진하다. 대선 전 결론을 내기 어려워지자 이 후보 측이 거꾸로 특검을 외치고는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각종 논란을 자신의 비천한(?) 출신으로 몰아가려는 읍소작전까지 등장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윤 후보 역시 손바닥 ‘왕(王)’자와 ‘개 사과’ 논란에 휩싸였다. 선대위 출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빚은 ‘문고리 3인방’은 잠재적 화약고다. 그가 던지는 지역, 청년 등 분야별 공약은 실현 가능성보다는 현안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다. 종부세,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발언 등 하루가 멀다하고 설화(舌禍)가 터져나온다. 실수가 아닌 실력으로 비칠 정도다.

그런데도 국가와 미래를 고민하는 정책이나 비전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승자독식’이라는 정치 프레임에 얽매인 표퓰리즘(표+인기영합주의)이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이재명식 국가기본소득과 음식점총량제 등은 ‘없던 일’이 됐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국민’을 빙자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문재인정부와 각을 세우며 표 모으기에 공들인다. ‘조국의 강’을 건너겠다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탈원전, 부동산정책에 대한 비판도 마구 쏟아낸다.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 보상이 ‘쥐꼬리’라며 재정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윤 후보 역시 오십보백보다. 국가재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원 지원을 들고 나왔고, 이 후보가 맞장구쳤다. 말 그대로 돈 풀 궁리만 하는 ‘쩐의 전쟁’이다.

그리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했다. 교황은 “참여와 노력, 인내를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의 ‘어려운 해답’보다 권위주의의 독단과 포퓰리즘이 내놓는 ‘쉬운 해답’이 더 유혹적일 수 있다”면서 “해결책은 ’좋은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푼 돈’ 몇푼 쥐여주는 게 아니라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정치일 것이다. ‘2030’의 표심을 얻겠다면서 정작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연금개혁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사적연금에 비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은 저출산·고령화로 고갈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2040년 적자로 전환되고, 2054년 완전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음보다 눈앞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심보다.

국민이 어찌 되든, 국가재정이 파탄 나든 정권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만 들끓는다. 선동정치로 나라 곳간을 열어 유권자들에게 표를 판 그리스, 베네수엘라의 대가는 혹독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유권자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뽑겠지만, 이러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민다. 아무리 정치판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간사함의 ‘끝판왕’이라지만, 국가지도자는 진영논리를 떠난 국가 존립의 문제다.

한밤중에 서로를 죽여야만 사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최연장자인 오일남 할아버지가 외친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라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택은 우리 몫이지만,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할 판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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